국제 경제·마켓

일손 부족→임금 인상→서비스료 상승…더 깊어지는 'I의 늪'

[장기화되는 美 인플레]

◆상품 넘은 서비스 물가 상승률

미용·외식·급식·교통·주거비 등

가격 잘 안 떨어지는 경직성 CPI

9월 8.5%로 40년 만에 최고치

실업률 3.5%로 내려 구인난 여전

"임금 인플레 하락 어렵다" 무게

12월 자이언트스텝 전망치 껑충

미국 워싱턴DC의 한 가게 앞에 구인 공고가 붙어 있다. 미국의 인력난은 임금 상승의 요인이 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있다. AFP연합뉴스미국 워싱턴DC의 한 가게 앞에 구인 공고가 붙어 있다. 미국의 인력난은 임금 상승의 요인이 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올 8월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미팅) 연설에서 “우리가 오늘날 특별히 당면한 위험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길어져 고물가에 대한 기대 심리가 고착화되는 것”이라며 “가파른 물가 상승이 일상이 되면 극복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고통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대로 연준이 두려워하는 상황은 바로 인플레이션의 장기화다. 연준이 7월부터 잇따라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3일(현지 시간) 발표된 9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연준의 이런 걱정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시작된 이번 인플레이션 주기 이후 처음으로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서비스 물가 상승률(6.7%)이 상품 가격 상승률(6.6%)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서비스 부문에는 물가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 품목이 다수 포함된다.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이 이날 발표한 9월 경직성(sticky) CPI 상승률은 8.5%로 1982년 6월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직성 CPI는 물가 조사 품목 중 한번 가격이 결정되면 잘 변하지 않는 품목만을 따로 모아 산출한 지수다. 경직성 CPI가 높을수록 가격이 다시 떨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의미인데, 이 경직성 물가 항목에 포함되는 24가지 품목 중 17개가 상품이 아닌 서비스다.

대표적인 품목이 주거비(렌트·월세)다. 전월 기준 7월에 0.5% 올랐던 주거비는 8월 0.7%, 9월에는 0.8%로 상승 폭이 더욱 커졌다. 주거비는 전체 인플레이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에 이른다. 또 다른 서비스 품목인 교통비도 8월 0.5% 상승에서 9월에는 1.9%로 크게 뛰었다. 미용실 비용과 드라이클리닝 비용은 한 달 만에 각각 5.1%, 6.5% 높아졌다. EY파르테논의 최고이코노미스트인 그레고리 다코는 “상품 분야의 수급 불일치가 인플레이션의 불을 붙였다면 이제 물가 상승 국면은 서비스와 임금이 주도하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서비스 부문 가격에 불이 붙은 주요 원인으로 인건비 상승을 꼽는다. 아이제굴 자힌 텍사스대 교수는 “서비스는 상품보다 생산 비용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인플레이션의 핵심 동인은 임금 상승”이라며 “구인 수요는 많고 일할 사람은 없는 고용 시장의 상황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9월 CPI에서 단순 식품 비용은 전월 대비 0.7% 오른 반면 노동 집약적인 외식비는 0.9% 상승했다. 특히 학교나 직장 급식 비용은 9월 한 달 만에 44.9%나 급등했다. 외식비는 전체 CPI 가운데 5.1%의 비중을 차지한다.

관련기사





문제는 인건비 상승의 근본 원인이 개선될 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발표된 9월 고용 보고서에서 시간당 임금은 5% 올랐다. 전월(5.2%)보다 다소 둔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실업률이 전월 3.7%에서 3.5%로 낮아지면서 일할 만한 인력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조시 하우스먼 미시간대 교수는 “고용 시장의 둔화 없이는 임금 인플레이션의 하락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결국 남은 길은 연준이 금리 인상 행보를 강화하는 것뿐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9월 CPI 발표 이후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연준이 11월에 이어 12월에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기존 전망은 12월 0.5%포인트 인상이었다. 바클레이스가 예상하는 내년 최종 금리는 5~5.25%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시된 4.5~4.75%보다 약 0.5%포인트 더 높다.

시장에서도 최종 금리가 5%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서 내년 3월 기준금리를 4.75~5.00%로 보는 확률이 43.3%로 가장 높았지만 5.0~5.25%의 확률도 32.7%에 달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4.5~4.75%가 47.1%로 가장 높았지만 9월 CPI 발표 이후 전망이 바뀐 것이다. 12월 FOMC에서 0.75%포인트 인상될 확률(61.8%)도 0.5%포인트 인상 확률(36.9%) 보다 더 높아졌다.

경기 침체 전망도 커지고 있다.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은 “그동안 인플레이션에 뒤처져 있던 연준은 공격적인 긴축적 통화정책을 취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며 “연준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지만 연착륙할 가능성도 없다”고 말했다. 푸르덴셜파이낸셜의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PGIM의 데이비드 헌트 최고경영자(CEO)는 “이제 우리는 더 높은 인플레이션, 더 높은 금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전과 다른 시대(regime)로 접어들고 있다”며 “높은 금리는 결국 침체로 이어질 것이고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