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화가의 꿈이었다.
1956년 파리로 건너간 김환기는 3년간 한국성과 자연미의 정수를 뽑아냈다. 이응노는 1959년부터 파리에 정착해 문자추상과 ‘군상’ 연작 등 대표작을 완성했다. 김창열은 미국을 거쳐 1969년 옮겨간 파리에서 그 유명한 ‘물방울’을 탄생시켰다. 이성자,남관,한묵,이우환,권순철 등 뚝심있고 걸출한 화가들은 하나같이 파리를 거쳐갔다. 서양화를 택한 이상, 파리는 미술의 성지(聖地)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종로구 자하문로 299번지 한 건물에 나란히 둥지를 튼 웅갤러리, 본화랑, 브루지에-히가이 갤러리가 연합 기획전 ‘레 파리지앙(Les Parisiens)’을 열고 있다. 1930년대부터 100년 가까이 ‘재불작가’라는 이름으로 연대해 온 작가들 9명을 세대별로 추렸다.
1세대 작가 이응노의 ‘문자추상’과 김창열의 ‘물방울’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명절이면 후배작가와 그 가족들까지 집으로 불러들인 ‘파리의 큰형님’이었다. 1980년대 이후 파리로 간 이배와 한홍수가 2세대로 분류된다. 이배의 ‘붓질(The Brush Stroke)’과 한홍수의 ‘결’이 웅갤러리 2층 전시장에 나란히 걸렸다.
이번 전시의 진정한 묘미는 2000년대 이후 파리로 간 3세대 작가들의 다채로움이다. 새하얀 천을 당기고 비틀고 주물러 특유의 물성을 드러내며 감각을 환기시키는 이인혁, 자연의 색과 형태를 해체한 장광범과 홍일화, 질퍽하고 끈적한 물감 덩어리의 느낌 그 자체를 보여주는 이유, 기하학적 부조로 공간에 생동감을 더하는 진효석이 그 주인공이다. 전시는 2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