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반도24시]국제 정치에서 적과 친구

■이춘근 국제정치 아카데미 대표

한미일 대잠수함전 훈련 실시에

野지도자 '日과 훈련' 비난하지만

외교무대서 영원한 적·친구 없어

국익 위해 적과도 손잡는건 당연





9월 30일 북한이 발사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일본 열도를 가로질러 북태평양의 한 지점에 낙하했다. 사정거리 4500㎞인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은 일본 열도를 뒤집어 놓았고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레이건 항모 전단을 다시 동해로 불러들였다. 중거리 미사일 발사 며칠 전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을 단행했고 미국은 한국 및 일본 해군과 함께 대잠수함전 훈련을 실시했다. 일본 해군은 잠수함 작전에 관한 한 세계 최상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훈련을 두고 말들이 많다. 특히 야당 지도자들이 핏대를 올리며 비난을 하는데 한마디로 “일본과의 훈련이 웬말이냐”라는 것이다. 세월이 어떻게 흘렀고 국제정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소리를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이 마구 해대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제정치의 영역은 영국의 파머스턴경이 오래전 말했듯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곳이다. 영원한 것은 국가 이익일 뿐이다. 그래서 국가들은 수시로 적과 친구를 바꾸고 그렇다고 해서 의리 없는 자라고 비난 받지도 않는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고별사에서 어떤 나라에 대해 과다한 친밀감 혹은 적대감을 보이는 것은 스스로 노예가 되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미국은 적과 친구를 빈번히 바꿔가며 국가 이익 추구를 극대화한 결과 건국 200년 만에 세계 1위의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은 독일과 일본이라는 대적과 싸우기 위해 공산국가인 소련과 함께 싸웠다. 2차대전 이후 소련 공산주의의 도전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은 2차대전의 주적 독일과 일본을 재무장시켰다. 1960년대 말엽 소련을 붕괴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미국은 중국과도 화해했다. 결국 미국은 소련을 붕괴시키고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 됐다. 소련을 붕괴시키는 과정에서 미국에 협력한 중국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해 세계 2위로 부상했다. 우쭐한 중국은 지금 미국의 자리를 빼앗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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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독일에서 일본까지 날아온 유러파이터 전투기 3대가 일본 상공에서 일제 전투기 F-2 3대와 함께 연합훈련을 단행했다. 가상 적국이 중국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70여년 전 만 해도 미국의 철천지원수였던 독일과 일본이 미국의 오랜 친구였던 중국을 표적으로 삼는 훈련을 벌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월이 도래한 것이다. 사안이 너무 예민하다는 이유로 독일의 전투기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대신 독일 공군의 수송기가 성남 공항에 착륙했다. 중국 혹은 북한이 대한민국을 위협할 경우 독일은 한국 편에 설 것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변하는 세상에서 아직도 일본을 적으로 보는 정치가들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변하는 국제정치를 감지하지 못하고 중국·러시아를 쳐다보다가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 말엽의 고종(高宗) 같은 정치가는 더 이상 필요 없다. 국제정치학의 이론과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도 알 수 있는 적국(敵國) 판단 기법을 살펴보자.

우선 자기보다 힘이 더 막강한 이웃 나라들을 모두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잠재적인 적국으로 상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런데 그런 나라들이 두 나라 있는 경우 그중에서 힘이 더 강한 나라(A)를 잠재 적국으로 상정하고 힘이 상대적으로 덜 강한 나라(B)와 연합해 힘이 더 강한 나라를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기본 원칙이다. 우리나라 주변의 중국과 일본은 둘 다 우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다. 그런데 지금 당장 힘이 더 센 나라는 중국이다. 그 경우 당연히 우리는 일본과 함께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 정석이다. 교과서적 이야기이고 세계 모든 나라들이 다 그렇게 한다. 원칙대로 했는데 일본과의 훈련이 웬말이냐며 분개한 높으신 분들의 국제정치학적 무지를 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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