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메르켈, 평범해서 더 특별한 '독일 무티'

■앙겔라 메르켈(우르줄라 바이덴펠트 지음, 사람의집 펴냄)

16년간 재임한 메르켈 전 獨총리

강점·업적서 약점·과오까지 평가

'엄마 리더십'으로 타협 중시했지만

미래 비전·개혁방안은 제시 안해

"한계에도 실용적 사고 이어받아야"





독일의 ‘무티(엄마)’라 불리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68). 그에게는 최초의 여성 총리,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 최연소 독일 총리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또 16년간의 재임 기간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을 유럽의 최강국으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9월 퇴임 이후 1년간 쏟아진 메르켈 전기도 찬양일색이다.



하지만 신간 ‘앙겔라 메르켈 : 독일을 바꾼 16년의 기록’은 메르켈의 강점과 업적은 물론 약점과 과오까지 냉정하게 들여다보면서 이른바 메르켈리즘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독일 저널리스트인 우르줄라 바이덴펠트다. 그는 메르켈에 대해 “21세기 새로운 지도자 유형”, “특별할 것이 없는 것이 특별한 사람”, “탁월함이 아닌 평범성 천재”라고 평가한다.

물리학자였던 메르켈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다. 메르켈의 부상은 행운과 우연의 결과물이었다. 당시 동독 출신의 여성 정치인이 필요한 시대적 상황 덕분에 메르켈은 기독교민주연합(CDU)의 헬무트 콜 총리에게 구색 맞추기용으로 발탁돼 여성부 장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메르켈은 콜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CDU의 기부금 스캔들에서도 자유로운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고 이에 힘입어 당 대표에 올라설 수 있었다. 2005년 총리로 선출된 것도 때마침 사회민주당의 전임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개혁 프로그램에 염증을 느낀 결과였다. 물론 여성인 메르켈이 수많은 남성 엘리트들을 제치고 한 시대의 상징이 된 것은 통찰력과 정치적 능력, 개인 생활의 소탈함 등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었다.

관련기사



그는 이공계 출신답게 전문가 의견을 경청했다. 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하고 기다리면서 사태가 저절로 해결되기를 바랐고 결정적인 기회가 왔을 때만 움직였다. 아울러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현실을 바꿀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소신과 목표를 포기하고 타협했다. 일각에서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하지만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에 구애받지 않은 실용주의자였다. “메르켈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도, 갑작스러운 공포도 주지 않는다. 그저 루틴에 따라 모든 일을 소리 없이 처리해 나간다. 이런 방식은 유권자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저자는 메르켈의 네 번 연속 총리 선출은 유권자가 아니라 의회가 정부 수반을 뽑는 독일 정치 체제였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메르켈에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같은 카리스마나 웅장한 연설 능력, 포퓰리즘적 성향이 없었다. 나아가 미래 비전이나 개혁 방안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정치인의 역할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리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금 개혁이나 건강보험 개혁이 연정 협상에 장애물이 된다고 판단하면 쉽게 퇴각했다. “각 세대는 자기 시대의 정치적 과제들과 스스로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정치적 태도였다”

저자는 “메르켈은 기후, 연금, 의료, 광대역 확대, 교육, 노동 격차, 경쟁력 같은 국가의 모든 구조적 문제를 머리로는 매우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구체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가지고 유권자들을 변화의 길로 설득하는 위험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재선이 우선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위기의 구원자’라며 메르켈에게 쏟아진 찬사는 올바른 것일까. 저자는 메르켈의 이해관계 중재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과대평가됐다고 말한다. 일단 독일의 경제 성장은 유로화의 상대적 약세, 유럽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중국의 급성장에 힘입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또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수십억 유로의 경기 부양책을 거부하다가 경제가 붕괴되기 직전에야 방향을 바꾸는 오류를 범했다.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 때도 2년이나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신속한 행동을 주저하는 메르켈 리더십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다만 저자는 앞으로 수십 년 안에 발생할 온갖 위기 상황에서 차기 지도자들은 실용적으로 행동하고 국민의 충실한 종복이 되고자 했던 메르켈의 정치적 유산은 이어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번역자인 박종대는 “메르켈은 어쩌면 여전히 이념을 강조하고 사명감을 부르짖는 오늘날의 우리 정치인들에게 미래의 정치인상을 보여주는 게 아닐지 모른다”고 말한다. 2만5000원.


최형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