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중국 경제와 헤어질 결심







바이오부 맹준호 차장

“킹달러는 페트로 달러 흔들기에 대한 미국의 대답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주요국 통화 중 오직 미 달러화만이 초강세를 보이는 이른바 ‘킹달러’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세계경제의 지형은 미국 진영과 반미 진영으로 확연히 갈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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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얘기는 이렇다. 중국·러시아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미국에 반기를 들면서 석유를 오직 달러화로만 거래하는 국제 관행인 ‘페트로 달러’ 시스템을 흔들려고 한다. 미국의 패권을 받치는 두 기둥은 달러화와 군사력인데 미국이 이걸 그냥 두고 볼 리가 있겠는가. 킹달러는 세계경제 흐름상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세계가 더욱 애타게 달러를 찾게 해주겠다’는 미국의 의도 역시 그의 눈에는 엿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은 총수요를 줄여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도로 금리를 급격히 올리고 있다. 세계 주요국 중 코로나19 거리 두기가 끝난 후 경기와 고용이 미국처럼 강하게 살아난 곳은 없다. 그 때문에 미국은 금리를 올리지만 다른 나라는 그럴 여력이 없다. 더 많은 달러화가 미국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발생한 것이 킹달러 현상이다.

금리 인상만이 킹달러의 원인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최근 세계에서 미국만이 혁신에 기반한 성장에 성공했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애플·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테슬라 등 테크 기업들이 주도한 혁신에 따라 세계의 투자금은 미국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고 세계는 그만큼 더 달러화를 찾게 됐다.

달러 강세를 세계사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항해시대 이후 금본위제 시대까지 국부(國富)라는 개념은 금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였다. 이후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하면서 미 달러화를 얼마나 보유했느냐가 국부의 척도가 됐다. 페트로 달러 관행이 자리 잡은 이후에 모든 국가는 에너지를 비롯한 주요 재화를 외국으로부터 사오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달러화를 벌어야만 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는 각국이 외환위기를 피하기 위해 당장 쓰지도 않을 달러 표시 자산을 ‘외환보유액’이라는 이름으로 대거 저장하기 시작했다. 이같이 달러의 중요성이 계속 커져가는 역사의 한 과정에서 이번 킹달러 또한 이해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중러와 사우디의 달러 흔들기가 과연 성공할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지금의 킹달러 혼란이 진정돼도 달러화의 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본다. 이번에 뜨거운 맛을 봤기 때문에 누구나 달러를 더 확보하려고 할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러와 사우디의 달러화 위협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미국은 각종 수단으로 보복하는 형국이 지속되면서 달러화의 힘이 일정 수준 빠질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어떤 방향으로 가든 세계경제가 더욱 뚜렷하게 진영 대 진영 구도를 형성할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의 중러 배제 방침에 따라 공급망에서도 ‘진영 내 교역’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념과 진영을 뛰어넘는 세계화를 통해 생활수준 향상과 자본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던 시대는 이미 저문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이후 한중일의 동북아 3국 분업 체제는 한국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국제정치 여건을 볼 때 중국 경제와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테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


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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