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차기 총리로 리시 수낵(42) 전 재무장관이 확정됐다. 영국 역사상 최초의 비(非)백인 총리이자 1812년 로버트 젱킨슨(42년 1일) 총리 이후 210년 만에 최연소 총리다.
BBC와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24일(현지 시간) 보수당 당 대표 경선에서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가 의원 100명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 후보 등록에 실패하면서 단독으로 후보에 등록한 수낵 전 장관이 총리로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모돈트 원내대표는 후보 등록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의원 90명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100명을 채우지는 못했다. 앞서 또 다른 후보인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23일 후보에서 중도 사퇴했다. FT에 따르면 수낵은 보수당 의원 357명 가운데 168명의 지지를 얻었다. 이번 영국 총리 경선은 의원 100명 이상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당대표 후보 등록 자격을 얻으며 이후 의원 투표와 온라인 당원 투표를 거쳐 당선자를 결정한다. 등록 후보가 1명이면 자동으로 당 대표이자 총리가 된다.
뉴욕타임스는 “수낵 전 장관은 9월 총리 선거에서 감세를 내세운 리즈 트러스 후보의 정책에 대해 ‘동화’ 같은 얘기라며 강력히 비판했다”며 “당시에는 그것이 패배 요인이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승리의 요인이 됐다”고 했다.
수낵 전 장관이 총리에 취임하면 소신인 재정 보수주의에 따라 코로나19 기간에 풀었던 돈을 회수하고 증세와 지출 삭감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리즈 트러스 총리의 감세 폭탄으로 바닥에 떨어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수낵 전 장관도 전날 출마를 선언하면서 트위터에 “영국은 훌륭한 나라지만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했다”며 “그것이 내가 출마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1차 관문은 31일 발표될 예정인 예산안과 중기재정계획이다. 수낵 전 장관은 존슨 내각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풀어 인기를 얻었으나 코로나19 확산이 주춤해지자 법인세를 19%에서 25%로 인상하고 소득세 격인 국민보험(NI) 분담금 비율을 1.25%포인트 높이는 증세 등을 추진한 바 있다. 그는 트러스 총리에게 패했던 직전 총리 경선에서도 “이제 재정 건전성을 강화할 때”라며 ‘3년 후 균형재정 달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를 지지하는 도미닉 라브 전 부총리는 “우리는 후퇴할 수 없다”며 “수낵 전 장관은 지난 선거에서 옳은 (경제) 공약을 내놓았고 이는 지금도 적용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 대응책을 마련하고 위기에 처한 보수당을 통합해 2024년 총선에 대비하는 것도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영국은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6년간 무려 4명의 총리가 바뀌는 등 극심한 정치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브렉시트 투표 직후 물러났고 테리사 메이와 존슨이 각각 3년 만에 사임했으며 트러스 총리는 44일 만에 퇴임해 최단명 총리 기록을 세웠다.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수낵 전 장관이 보수당 강경파를 끌어안지 못할 경우 또다시 단명 총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도 이민자 가정 3세인 수낵 전 장관은 카스트제도의 최상위인 브라만 계급에 속한 의사 아버지와 약사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엘리트다. 부인은 인도의 다국적 정보기술(IT) 기업 인포시스 창업자 나라야나 무르티의 딸이다. 금융권에 몸담았다가 정계에 진출한 그는 2015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뒤 메이 내각을 거쳐 존슨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맡았지만 존슨 전 총리의 스캔들이 터지자 장관직에서 물러나 존슨 사임에 결정적 역할을 해 보수당 내에서는 ‘변절자’의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