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기억이 소중한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유한성이 디지털을 통해 불멸의 무한성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어요. 그 속에서 불멸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의 이준익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 기억과 행복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근원과 욕망에 대한 존재론적·인식론적 질문을 계속해 던진다. 인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던져진 이 질문에 대한 이 감독의 답은 “이별이 있어 삶이 아름답다”이다. 25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감독은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가장 알차게 사는 사람”이라며 “인간의 삶이 더 숭고해지려면 아름다운 이별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욘더와 스케일은 다르지만, SF를 통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매트릭스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재현이 약물로 가상세계를 오가는 모습과, 변화가 없이 고정된 가상세계 욘더를 없애려는 모습에서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겹쳐 보인다. “현재에 충실하자”는 메시지에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시간성 속에서 인간성이 나온다는 메시지에서 하이데거의 현존재 철학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감독은 “SF라면 거대한 스케일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가장 작은 이야기로 가장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작품의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정교하게 설정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재현’으로, 현실 이후를 갈망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은 ‘이후’로 설정했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원작의 어색한 이름 대신 의미를 깊게 전달할 수 있는 이름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무대가 바뀌는 수단을 ‘무지개다리’로 설정한 데 대해서는 “이야기를 쓰다 무의식적이고 감각적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드폼 드라마인 욘더는 이 감독의 첫 시리즈이자 OTT 도전 작품이고, 내년 상반기 파라마운트+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를 만난다. 이 감독은 “서양에서 시작한 SF를 국내외 관객들 모두가 수용할 수 있도록 제작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OTT를 통해 극장에서 만날 수 없던 폭 넓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블록버스터 등 장르적 쾌감을 주는 영화도 좋지만, 자신의 내면·영혼과 만날 수 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작품 중에서 이 감독은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재현의 이상주의적·낭만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소재로 활용했고, 이병률의 시 ‘사람이 온다’를 이후의 내면을 묘사하는 대사의 일부로 차용했다. 문학적 표현을 작품 속 상징으로 사용한 이 감독은 욘더가 실재한다면 어떤 기억을 저장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와 같이 대답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가장 좋아합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이 문구를 욘더에 남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