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소득세는 국내 투자 여건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제도 변화다. 국내 금융시장이 극도로 민감한 시기에 대대적인 제도 변화가 가져올 리스크를 고려해 정부는 금투세 도입 유예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금투세를 유예하려면 그전에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어 이대로라면 약 두 달 후부터 꼼짝없이 실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투세 시계가 짹깍짹깍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속이 타는 이들은 개인투자자들이다. 가뜩이나 극심한 증시 침체로 부양책이 나와도 모자랄 판에 개인 큰손들의 등을 떠미는 정책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26일 정부에 따르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금투세 유예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은 너무 경제가 불안하고, 특히 주가 쪽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기에 최소 유예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국감에서 “(금융투자) 시장 환경의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주식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도 변화는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금투세는 주식을 비롯한 금융상품 투자로 얻은 수익이 연간 5000만 원을 넘으면 수익의 20%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지금은 일반 투자자들은 주식 매매에서 수십억원을 거둬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다만 연말 기준 한 종목당 10억 원 이상을 보유하면 세법상 대주주로 간주해 양도세를 매긴다. 대신 국내증시에서는 거래세를 거둬들였다. 그러나 실제 실현 손익이 아닌 거래에 따른 세금 부과는 후진국형 세금제도라는 점에서 여야는 금투세 도입을 2020년 통과시키고 유예 기간을 거쳐 2023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당시 세제 개편안에는 증권거래세를 0.23%에서 0.20%로 인하하는 방안도 담겼었다.
정부와 여당은 금투세 시행을 2년 유예하고 종목당 100억 원 이상만 대주주로 간주하는 세법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 정국에서는 예정대로 내년 초 시행이 불가피하다. 납부할 투자자가 극소수에 불과해 유예는 곧 ‘부자 감세’라는 것이 야당의 입장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최근 3년간 주요 5개 증권사에서 연평균 금투세 면세점인 수익 5000만 원 초과 1억 원 미만을 거둔 투자자는 전체 투자자의 0.9%(6만 7281명)였다”며 “수익 1억 원을 초과한 투자자도 0.7%(5만 6294명)에 그쳤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2020년 여야가 합의를 통해 2023년부터 금투세를 도입하기로 한 만큼 정부가 이를 손바닥 뒤집듯 바꿔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금융투자 상품으로 고수익을 얻는 거액 자산가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아닌 대다수의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입까지 두 달을 앞둔 시점에 논의가 표류하면서 증권사와 투자자들이 겪는 혼란만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투자자들은 이에 금투세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튜브 채널 ‘와이스트릿’은 총상금 2500만 원을 내걸고 ‘금투세 유예’를 관철하기 위한 청원 동의 캠페인을 벌인다고 밝혔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인증한 구독자 가운데 25명을 선정해 1인당 100만 원씩을 지급할 계획이다. 슈퍼 개미 김정환 대표가 사비로 캠페인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날 기준 이 청원 글은 3만 8000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회피를 위해 연말마다 투매가 이뤄졌던 것처럼 금투세 도입이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주주 양도세는 연말·연초 증시 수급을 왜곡시키는 주범 중 하나였다. 대주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시점이 12월 말이다 보니 주식 보유 금액이 많은 개인투자자들은 대주주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12월만 되면 보유 주식을 매도하는 일이 빈번했다. 금투세도 불확실성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개인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한 5000만 원을 넘는 차익에 대해서는 미국 주식과 세금상의 차이가 없어지면서 국내 증시 투자에 대한 매력도가 급감할 수 있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주식 양도세를 도입했다가 증시가 폭락한 사례도 있다. 대만은 1988년 10월 주식 양도차익 과세 도입을 발표한 직후 한 달 동안 주가가 30% 넘게 추락했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시행 1년 만에 과세를 철회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재무장관이 사과하고 사임하기까지 했다.
일각에서는 수급 공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대형 증권사의 PB는 “올해 약세장이 계속되면서 차익을 보지 못하고 이른바 ‘물려 있는’ 고객들이 다수”라며 “세금 때문에 투매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