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인플레 덮친 소련선 돈 대신 벽돌을 모았다

■화폐의 추락

스티브 포브스 외 3인 지음, RHK펴냄






화폐의 역사는 기구했다.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는 방탕한 사치에 흥청망청 돈을 썼다. 쓰기 위해 돈을 찍었고, 은화에 구리를 섞어 그 가치를 떨어뜨렸다. 주화는 더 많이 찍었고, 액면가는 더 높아졌다. 군인들은 ‘가치없는’ 은화 받기를 거부했고 급여로 현물만 받으면서 로마의 암흑기가 시작됐다. 옛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구 소비에트 연방에서도 이처럼 화폐 가치는 추락하고 물가는 치솟는 상황이 전개됐고, 사람들은 돈을 저축하는 대신 벽돌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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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화폐의 추락’은 인플레이션이 무엇이며, 왜 나쁘고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파고든 책이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편집장인 스티브 포브스, 통화 정책과 경제사 분야의 전문가 네이선 루이스,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에임스가 함께 썼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물가 상승이 아니다. 책은 인플레이션을 “돈이 가치를 잃을 때 발생하는 가격의 왜곡”이라고 정의한다. ‘화폐 찍어내기’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돈이 풀려도 수요가 충분하면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의 통화량은 1775년에서 1900년까지 약 163배나 증가했지만 “달러의 가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1800년대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오히려 미국은 투자 자본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산업 강국으로 성장했다. 인구 900만명의 스위스는 인구가 3800만명으로 4배 수준인 캐나다와 비교했을 때 1인당 본원 통화(은행의 지급준비금 및 시장 유통 화폐 발행액)가 8배나 더 많다. 인구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이 풀려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스위스 프랑은 지난 100년간 가장 안정된 통화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수요가 높았기 때문이다.

책은 악명높은 화폐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살펴보며 당시 ‘돈 찍어내기’에 급급했던 정부 정책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었는지를 짚어준다. 저자들에 따르면 모든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궁극적으로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관건은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끝낼까에 있다. 책은 “국가가 세금을 인상하거나 초고금리를 설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간단하다. 통화의 가치를 안정시키면 그만이다”고 주장한다. 통화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할 때 정부가 통화 지원 정책을 시행해 통화의 가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낼 것. 그리고 정부가 외환 시장에서 자국 통화를 매수하거나, 국채를 자국 통화와 교환해 판매하는 식으로 통화 공급량을 줄이면 된다고 조언한다. 복잡한 사안을 간명하게 정리해버리는 문체가 특징인 책이다. 1만98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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