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출범 5개월이 지나도록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된 각종 규제에다 연이은 금리 인상 및 집값 고점 인식이 더해지며 부동산 거래가 실종됐지만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은 외면했다. 그러다가 27일 대통령 주재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실수요자 보호 및 거래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중도금 대출 보증 분양가를 12억 원으로 확대하고 무주택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50% 완화,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도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규제 완화책을 내놓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규제 완화의 타이밍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미 부동산 거래절벽으로 고통받은 국민들이 너무나도 많다. 자녀 교육을 위해 또는 직장과 가까운 곳을 찾아 집을 매입하거나 분양 받았다가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하지 못한다는 아우성이 잇따랐다. 서울만 보더라도 집계가 가능한 올해 1~9월 아파트 매매 거래량(신고 기준)은 982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만 7268건의 4분의 1 수준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분양 받은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는 사유를 조사하니 ‘기존 주택 매각 지연’이 36.4%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나타냈다.
거래 실종의 부작용은 단순히 이사를 하려던 이들의 발목을 잡는 데 그치지 않았다. 주택 거래가 감소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세수가 줄며 재정 및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올 들어 취득세 세입이 이달 초 기준 4조 839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조 3600억 원 감소했다. 감소율로 따지면 21.9%에 달한다. 서울시는 전체 세입에서 취득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27.9%에서 올해는 22%대로 급감할 것으로 내부적으로 보고 있다. 경기·부산·인천 등 다른 주요 지자체 사정도 비슷하다. 지자체의 재정 적자가 커지면서 중앙정부의 교부금 부담까지 불어나 국가 전반의 재정 건전성이 망가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개·이사·인테리어·가전업 등 부동산 관련 후방 산업도 줄줄이 타격을 받고 있다. 이사 성수기라는 것을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되면서 한 달에 전월세 계약서 한장 쓰지 못하는 중개업소가 줄을 잇고 이삿짐센터 일감도 반의 반토막으로 줄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8월 전국 신규 개업 공인중개업소는 906개로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15년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같은 달 폐업 공인중개업소는 994개로 집계돼 개업보다 폐업이 더 많았다. 서울 이사업체 폐업 건수 역시 2020년 48건, 2021년 63건이었는데 올해는 7월까지만 벌써 39건을 기록했다. 한샘·현대리바트·신세계까사 등 인테리어업체들의 실적도 악화됐다.
‘레고랜드’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시장 혼란까지 가세하며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우려가 최고조에 이르러서야 이날 정부는 가시적인 규제 완화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의 시기가 이미 늦었을 뿐더러 내용 측면에서도 얼어붙은 매수심리를 되살리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임대사업자 등록제 등 시장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것은 인위적인 부동산 시장 부양책이 아니다. 평범한 국민들이 살고 싶은 집을 사고 그곳으로 이사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비정상적인 규제를 풀어 달라는 것이다. 규제 완화가 집값을 자극할까 걱정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오히려 규제 완화를 집을 처분할 호재로 여긴 집주인들만 매물을 쏟아내 거래는 안 되고 집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주택 거래가 위축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추가 규제 완화책을 내놓아야 한다. 규제 완화도 타이밍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