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가 몰리는 상황에 대한 경찰의 대응 매뉴얼이 아예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유사한 압사 사고가 있었는데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는 치안 당국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31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태원 압사 참사처럼) 주최 측이 없는 다중 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의 관련 매뉴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과거 주최 측이 있는 축제 때는 사전에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소방·의료 등 유관 기관들이 사전에 역할을 분담해서 체계적으로 대응했지만 이번 사고는 그런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이번 참사와 유사한 사고가 다수 있었는데도 경찰이 인파 안전 매뉴얼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 2006년 3월 서울 롯데월드 무료 개방 행사 때 지하 통로 매표소에 11만여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35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유사 사고가 있었다.
인파 안전 관리 매뉴얼의 부재는 사고 초기 경찰이 현장 통제를 실패한 원인으로도 지적된다. 사고 현장에 있던 목격자 박 모 씨는 “경찰이 왔지만 현장 통제보다는 무작정 깔려 있는 사람을 빼내려 했다”며 “조기에 통제만 이뤄졌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경찰은 집회에 대규모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관련 매뉴얼이 없다 보니 참사의 징후를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홍 국장은 “(이태원 참사 당시 배치된 경찰이) 현장에서 급작스러운 인파 급증은 못 느꼈다고 한다”며 “판단에 대한 아쉬움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뒤늦게 주최자 없이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상황을 대비한 대응 매뉴얼 제작에 나서기로 했다. 홍 국장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관리 주체는 없으나 다중 운집이 예상되는 경우 공공 부문이 어느 정도 개입할 것인지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공권력을 체계적으로 작동해 재발을 막는 데 목표를 두고 (매뉴얼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도 사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선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주최자가 없는 행사는 거의 유례가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지침을 갖고 있지 않았다”며 “이번에 그런 부분이 지적된 만큼 관리·개선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