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데이를 맞아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을 찾았던 김 모(29) 씨는 인근 주점 주인을 잊지 못한다. 당시 좁은 골목을 가득 메운 인파에 김 씨는 숨이 턱턱 막혔다. 당장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으나 움직일 틈조차 없었다. 주변에서는 “살려달라”는 괴성이 터져나올 정도였다. 점점 힘이 빠지는 순간 김 씨의 눈에 인근 주점의 문이 열리는 장면이 포착됐다. 주점 주인이 “들어오라”고 손짓했고 결국 김 씨는 악몽 같은 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 씨는 “나에게 주점 주인은 생명의 은인”이라며 “몇몇 상인들이 직접 부상자들을 끌어내고 심폐소생술(CPR)에 참여하는 등 구조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3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이태원 참사 당시 구조에 나선 인근 상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는 시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선제적 대처로 다수의 생명을 구한 데 대한 감사 표시다.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에서도 마찬가지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감사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사고 현장 인근에 위치한 한 주점을 언급하며 “생명 살린 사장과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며 “애도 기간이 끝나면 꼭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또 다른 네티즌도 “1만 원가량의 입장료가 있었음에도 상황을 판단해 내부로 피신할 수 있도록 한 클럽도 있었다”며 “내부에서 CPR을 실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당시 목격자들에 따르면 참사 당시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일부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피해자 구조에 나섰다. 참사 현장을 목격했다는 성 모(27) 씨는 “일부 상점이 출입을 막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상인들은 가게 개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며 “이태원을 찾았던 지인은 인근 가게에 대피해 상처를 치료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인천 계양구에 거주하는 정 모(30) 씨도 “인근 주점 사장의 도움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당시 가게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만 일부 상인들은 당시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가게 문을 열고 구조에 나섰으나 이미 상황이 좋지 않아 제대로 실내로 이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남 모(80) 씨는 “다리에 멍이 든 두 여성이 맨발로 가게를 들어온 것이 참사의 시작이었다”며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가게를 개방했지만 인파에 짓눌린 사람들이 실내로 들어오지 못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상자들이 정신을 잃지 않도록 소량의 물을 입에 넣어주는 것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반면 당시 구조에 참여하지 않은 가게를 ‘마녀사냥’하는 여론이 일면서 2차 가해를 당하는 상인들도 많다. 이태원동 소재 가게 주인 A 씨는 “구조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리는데 수많은 죽음의 책임을 상인들에게 돌리는 것은 과하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또 다른 가게 주인 B 씨도 “코로나19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점에 또 다른 비극이 벌어졌다. 폐업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