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글로벌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 회사들은 3분기에 일제히 호실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 과잉 상태인 정보기술(IT)용 반도체와 달리 차량용은 여전히 공급 부족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이 반도체 업계 ‘블루칩’으로 뜨자 삼성전자(005930)까지 차세대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육성하고 나섰다.
6일 전자 업계에 따르면 NXP·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텍사스인스트루먼트·르네사스 등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은 지난 3분기 전장용 칩 사업 부문에서 모두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네덜란드 NXP는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서 전년 동기 대비 24% 성장한 18억 400만 달러(약 2조 55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스위스 기업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동종 분야 매출도 같은 기간 55.5% 증가해 15억 6300만 달러로 올라섰다. 일본 르네사스의 전장용 칩 사업 매출은 1578억 엔(약 1조 5195억 원)으로 30.1%나 늘었다.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차량용 반도체 매출을 따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관련 시장 성장에 힘입어 13% 증가한 52억 달러의 전체 매출을 달성했다. 이는 최근 복합 위기로 급격히 위축한 IT 관련 반도체 시장과는 크게 대조되는 흐름이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는 칩 공급이 자동차 대기 수요를 아직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장용 반도체 수요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IT 시장 확대와 더불어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자율주행·전기차 기술까지 발달하면서 반도체의 쓰임폭은 더 확장했다. 늘어난 수요와 달리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하는 업체들이 세계적으로 한정된 탓에 경기 침체 속에서도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현대차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수급 부족이 완화되고 있지만 한 해 총 생산량에 버금가는 108만 대의 주문량이 밀려 있다”고 토로했다.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은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차량용 칩 수급 문제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 마크 셰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최고경영자(CEO)는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견조해 18개월 이상 주문량이 밀려 있다”고 말했다. 커트 시버스 NXP CEO는 “현재 공급망 상황을 보면 내년에도 차량용 반도체가 완판될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수요 대비 NXP의 공급량은 85% 정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급 부족 현상과 칩 성능 고도화로 가격 상승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반도체 회사 온세미는 지난달 자사 실적 발표회에서 자동차용 센서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평균단가(ASP)도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상황이 이렇자 삼성전자 역시 전장용 칩 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점찍고 투자 확대에 나섰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27일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최근 전장 시스템 수준이 올라가면서 차량 1대에 들어가는 메모리 탑재량이 늘고 사양도 커지고 있다”며 “2030년 이후 차량 메모리 시장이 서버·모바일과 함께 3대 응용처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S.LSI) 사업을 총괄하는 박용인 사장도 같은 날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반도체의 날 기념식에서 본지 취재진과 만나 “전기차·자율주행차의 핵심은 카메라”라며 “삼성의 고해상도 카메라 (이미지)센서 기술을 기반으로 생산량을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