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역사와 지식 그리고 삶을 '펼쳐보는 공간'

■서점의 시대 (강성호 지음, 나무연필 펴냄)





종로구 인사동에는 고서(古書)만 취급한 뚝심있는 고서점 ‘한남서림’이 있었다. 중인 집안 출신의 백두용이 1905년에 열었는데 경영이 쉽지는 않았다. 1916년부터는 출판사업을 겸했고, 1926년에는 역사적 명필 700여 명의 필적을 모은 ‘해동역대명가필보’를 펴냈다. 백 사장이 은퇴를 준비해야할 무렵, 젊은 수집가 간송 전형필을 만났다. 간송은 1936년 한남서림을 인수해 문화재 수집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 다양한 고서를 수집했고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구했다. 국보 중의 국보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이 유물을 서점이 구해냈다.



온라인 서점의 득세와 전자책 유통의 시대를 맞았음에도 서점은 건재하다. “근대 전환기에 서점은 새로운 사상과 지식을 소개하고 전파하는 곳”이었으며 “책과 독자를 이어주는 지식 유통의 공간이자 출판운동의 매개체 역할”을 한 역동적 공간이 바로 서점이다. 신간 ‘서점의 시대’는 조선 말 등장한 우리나라 서점의 역사를 개괄하고 서점의 역할을 살폈다. 역사 연구가이자 직접 골목책방을 경영했던 적 있는 저자라 서점을 보는 시선이 유난히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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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서점의 태동이 늦었다. 종잇값이 매우 비쌌고, 종이는 지물포가, 책은 국가가 유통을 독점한 탓이다. 근대 인쇄술의 유입과 함께 다양한 서구 사상과 지식이 들어오면서 서점이 생겨났다. 저자는 국내 첫 근대적 서점을 ‘대동서시’로 봤다. 1886년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서대문 밖에 차렸다. 주한영책사, 회동서관, 신구서림 등 1910년 전까지 개점한 서점 수는 140여 곳에 달했다. 당대 서점은 고서와 문화재 수집의 거점이기도 했지만, 계몽운동의 구심점이자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이었다.

사상 통제가 심해지면 서점은 저항의 공간이 된다. 자의는 아니다. 평양경찰서는 1934~1935년 좌익서적을 압수해 대동강변에서 불태웠다. 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에는 경찰이 사회과학서점들을 압수수색했고, 불온서적을 판매했다며 서점 주인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해방 후 종로서적·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이 등장했고, 1990년대 말에는 예스24를 필두로 온라인 서점들이 주도했다.

서점의 탄생 발전기도 흥미롭지만 책 후반부 ‘서점본색’에 더 눈길이 간다. “한 시대의 중심에는 서점이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서점 거리의 역사 풍경, 서점 중심의 살롱문화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크다. 여행 전문서점, 독립서점, 카페형 서점 등 서점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소개한 저자는 “서점은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어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했다.1만8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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