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당신과 함께 해야 비로소 나는 내가 됩니다

우울한 상태에서 시작한 지방 강연

맞아주는 독자 눈빛에 원기회복 체험

힘들고 아플수록 서로 토닥여주어야

상처 뿌리일지라도 사람만이 희망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밀려올 때는 ‘차라리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해야 하고, 그 사람을 챙겨야 하니, 나의 마음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우니까요. 헤어 나오기 어려운 슬픔에 하염없이 그저 빠져있고 싶을 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아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을 때조차도,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해야 합니다. 혼자만 있으면 결국에는 더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저는 극도로 우울한 감정에 빠진 상태에서 간신히 몸을 추슬러 지방 강연에 나섰습니다. ‘몸은 기억한다’라는 기념비적 저서에서 트라우마와 몸의 상관관계에 주목한 베셀 반 데어 콜크는 몸이야말로 트라우마의 저장소임을 지적했지요. 우리 몸은 우리가 느끼는 모든 트라우마의 기억장치이자 저장소라는 것입니다. 트라우마는 마음뿐 아니라 몸에 커다란 타격을 남깁니다. 의식적으로는 아무리 힘을 내려 해도 힘이 나지 않는 이유, 그것은 트라우마가 깊은 상태에서는 몸 또한 쇠약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오늘까지만 버티고 내일은 쉬자’라는 마음으로 강연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강연이 시작되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여울 작가입니다’라는 저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로 저를 맞아주는 독자님들의 눈빛이 저를 우울의 늪에서 번쩍 끌어올려준 것입니다. 어떻게 박수소리만으로도 사람이 그토록 힘이 날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하고도 감격스러웠습니다. 박수라는 것이 그 자체로 응원과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저는 처음으로 강렬하게 체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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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갑자기 힘을 내어 강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의무감에서 시작된 강의가 진정한 신명으로 번져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제 강의에 귀를 기울여주시는 분들, 마스크를 쓴 상태에도 어떻게든 강렬한 공감을 표현하기 위해 매번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여주시는 분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도 듣는 듯 열심히 손글씨로 필기를 하는 분들, 제 책을 읽고 제 이야기에 공감하여 귀농을 하셨다며 눈망울을 반짝이던 분까지. 그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동안 힘들다고 우울해하면서 나 자신을 돌봐주지 못한 나’의 모습이 미안해졌습니다. 청중의 반응이 열정적이니, 저도 덩달아 기운을 내어 준비한 것 이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들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나를 온전히 환대해주고 있구나. 내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들이려 온 마음으로 내게 집중하고 있구나. 그 생각이 드니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비로소 더 나은 저마다의 자기다움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힘들고 아플수록 함께 모여서 서로 토닥이고 붙잡아 주어야 함을.

‘내가 독자에게 위로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독자에게 거꾸로 위안을 받았습니다. 제가 독자에게 힘을 드려야 하는데, 강의 들으러 와주신 분들에게 오히려 제가 힘을 얻어서 죄송한 느낌과 고마운 마음과 그래도 매일매일 기운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마구 엉켜서 집에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 있어야 힘을 얻는 존재라는 것을 눈물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우리 함께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언어 속에서 힘을 내기로 해요. 수없이 타인에게 실망할지라도 우리는 혼자서 자신을 위로할 수는 없는 존재이며, 타인으로부터 비로소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상처의 뿌리일지라도,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안간힘을 멈추지 말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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