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학령인구 감소, 대학 진학률 하락 같은 구조적 요인에 더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대학 교육의 근간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캠퍼스 중심 오프라인 교육에서 인터넷 플랫폼 기반 온라인 교육으로 무게중심을 옮기지 않을 경우 대학 위기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디지털 대전환에 선제 대응해 교육 혁신을 추진 중인 애리조나주립대(ASU)와 하버드대 등 미국 대학의 사례는 국내 대학들에 시사점을 준다.
14일 교육계에 따르면 하버드대는 올 3월 ‘교실 재해석, 콘텐츠 강화, 하버드 커뮤니티 확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하버드 미래 교수·학습 태스크포스팀(TFT)이 1년간 연구한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교실 강의는 온·오프라인을 접목한 혼합 교육(blended learning) 중심으로 한다. 또 10분 내외의 짧은 디지털 동영상 콘텐츠 제작을 늘려 온라인 기반 가상 캠퍼스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전 세계 학습자를 끌어들인다. TFT는 혁신 문화 강화를 위해 즉각 취할 조치와 함께 기술 인프라와 콘텐츠 전략 투자 강화(1~3년), 글로벌 확장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 탐색(장기) 등 3단계로 나눠 교수와 단과대·프로그램, 대학 본부의 역할과 혁신 과제를 제시했다.
염재호 태재대설립추진위원장은 “30년 뒤 대학 캠퍼스는 역사적 유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우리는 여전히 100명이 넘는 학생을 강의실에 몰아넣은 채 교수들이 칠판에 판서를 해가며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면서 “문제 해결형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국내 대학들도 디지털 교육을 적극 도입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SU의 혁신은 이미 국내 대학들에 성공 사례로 널리 회자된다. 1886년 교원 양성 대학으로 출발한 ASU는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안전하게 지원·합격한 뒤 학업보다는 파티를 즐기다 졸업하는 ‘파티 스쿨(party school)’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8년 연속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가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대학’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탈바꿈했다.
이 같은 성과는 2002년 취임해 20년째 재직 중인 마이클 크로 총장의 혁신 리더십이 밑바탕이 됐다. 크로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재정 확충을 위해 등록금을 인상하고 교직원 감축, 외국인 학생 유치 확대를 추진했다. 교수 종신재직권(tenure) 제도도 폐지했다. 구성원과 지역사회에서 빗발치던 ‘정장을 입은 깡패(thug)’ ‘독재적인 기업형 리더’라는 비난은 성과가 나타나면서 잠잠해졌다. 2002년 5만 5000명이었던 ASU 재학생은 현재 11만 명으로 2배 늘었다. 연구비도 같은 기간 1억 2100만 달러에서 6억 1800만 달러로 5배가량 증가했다.
ASU 혁신의 하이라이트는 온라인 교육 확대를 위해 ‘에드플러스(EdPlus)’라는 기업형 교육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에드플러스가 제공하는 코스를 이수하고 시험을 통과하면 원하는 경우 450달러를 내고 학점으로 변환할 수 있고 ASU에 입학하면 학점으로 인정된다. 에드플러스는 2020년 1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이현청 한양대 고등교육연구소장은 “ASU의 혁신은 명확한 비전과 강력한 추진력을 지닌 총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정부는 재정 지원 확대와 규제 완화를 통해 고등교육 발전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 대학들은 과감한 구조 개혁과 교육 혁신을 통해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물꼬를 틀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