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놀랐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망했다고 해서 처음에는 이태원에 있는 건물 하나가 무너진 줄 알았다. 예전 삼풍백화점 붕괴의 ‘데자뷰’인가 했다. 압사사고라는 걸 처음 알게 됐을 때 너무 허탈했다. ‘2022년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150여명이 사망하는 압사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후 언론 등에서 전해오는 수습 관련 소식들은 우울감만 더했다. 정부의 사후 수습과정에서는 당시 경찰 인력이 마약·성범죄 단속 목적으로 배치됐다는게 문제로 부각됐다. 대통령실 인근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경찰 인력이 대거 동원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몇 년 전부터 할로윈이 축제화하면서 군중들이 모여든다는 건 경찰에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클럽 등 유흥장소가 밀집한 이태원에 다중이 일시에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 경찰이 범죄 단속을 강화하려고 한 게 잘못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또 예정된 대규모 시위에 경찰력을 배치한 것도 문제가 될까.
우리나라가 더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님은 자명하다. 일부이기는 하나 ‘90% 이상의 하수구 물에서 마약성분이 검출된다’는 보도까지 나올 정도다. 또 성범죄의 증가추세 속에 경찰이 성범죄 단속에 중요성을 둔 것에 합리성을 부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미리 신고된 대규모 시위에 대해 경찰 인력을 배치한 게 어떤 문제가 있다 하기도 어렵다.
핵심은 촘촘한 폐쇄회로(CC)TV 속 화면과 급증하는 119 신고에 대한 모니터링 등 분석·처리·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프로세스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또 보완이 필요한지 찾아내 개선하는 점이다. 하지만 참사와 관련해 정부는 서장급과 팀장급 경찰을 직무유기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하고 추가적인 입건 등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사후약방문’이자 ‘희생양 찾기’식 대처가 아닌가 싶다. 경찰의 형사 범죄 때문에 이 참사가 발생한 것일까.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필요하다. 일련의 과정에서 이번 참사 관련해 행정상 일부 미흡이나 위반이 발견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사 수습의 목표는 여러 요인들을 정밀하게 분석해 향후에 어떤 재발방지 매뉴얼을 도출해내는 것에 있어야지, 공무원 개인의 형사책임으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제통화기금(IMF) 환란 당시에도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가 직무유기로 구속됐지만 모두 무죄판결이 선고됐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밀하게 그 원인과 대책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희생양 찾기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희생양 찾기는 공무원들에 대한 면피문화로 연결될 뿐이기 때문이다. 면피행정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