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자의 눈]감기약 값 인상만으로 품절대란 못 막는다

이재명 바이오부 기자





“정부가 감기약값을 올려준다고 해서 다행이기는 한데 과연 생산량이 얼마나 늘어날지는 의문입니다.”



약값을 깎는 데만 골몰하던 정부가 매우 이례적으로 감기약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약국 조제용 해열제(아세트아미노펜) 가격이 정부의 입김에 너무 낮게 책정되다 보니 증산 유인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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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열제 가격 인상 방안은 올 초 코로나19 재유행기 감기약 품절 대란 이후 정부가 내놓은 각종 생산 증대 대책 중 가장 파격적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국내외 제약사 6곳을 대상으로 의견을 청취하고 이르면 다음 달부터 기존 가격보다 3배 가까이 약가를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약가 인상에도 감기약 품귀를 해소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먼저 이미 겨울철 재유행이 시작됐고, 약가 인상이 확정된 후 현장 생산 스케줄을 조정하더라도 약국에 약이 공급되려면 일정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감기약 제약사 관계자는 “여전히 일반의약품용 감기약이 조제용보다 비싸기 때문에 조제용 생산량 증대는 시장의 논리보다 정부와의 협의와 선의로 작동할 것”이라며 “이미 감기약 생산 라인은 풀 가동 중으로 어느 한쪽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고 비관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원료의약품 부실 문제가 깔려 있다. 그동안 정부가 약값을 깎아온 대로 국내 제약사들은 원료 비용이 저렴한 중국과 인도로부터 아세트아미노펜 등 감기약 원료 수급처를 전환해 왔다. 자연스럽게 국내 원료의약품 생산처는 줄어들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19년 16.2%, 2020년 36.5% 수준으로 업체는 10년 사이 99곳이 사라졌다. 약값 인상과 관계없이 글로벌 원료 수급난과 원자재 가격 인상이 닥치면 언제든 감기약 대란은 재연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제약 산업의 기초 체력 확보를 위해 적정한 약가와 원료의약품 자급화 정책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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