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말기암 환자 살린 ‘NGS’…“발병 초기부터 유전자 검사 필요”

[메디컬인사이드] 이승현 경희대병원·후마니타스암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癌유발 유전자 찾는 NGS 도입

발생빈도 3% MET변이서도 효과

건보 조건부 급여로 부담 줄어

161개 유전자 분석 경희대병원

NGS 검사기간도 2주내로 단축

"병기 낮아도 맞춤형 치료 가능"

이승현 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가 NGS 검사를 통한 맞춤형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욱 기자이승현 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가 NGS 검사를 통한 맞춤형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욱 기자




"환자가 깨어났어요!"



올 1월 경희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비소세포폐암 4기로 진단 받고 뇌 전이가 일어나 의식이 없었던 강모씨(65·여)가 한달 여만에 눈을 뜬 것이다. 전체 폐암의 80%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 중에서도 4기는 폐를 싸고 있는 흉막에 암세포가 전이된 말기 상태를 뜻한다. 같은 비소세포폐암이라도 1기는 5년 생존율이 최대 92%에 달하지만 4기는 10% 정도로 예후가 좋지 못하다. 암이 넓은 범위를 차지하다보니 수술과 방사선치료 모두 불가능한 탓이다. 경희대병원 의료진은 표준치료제에 해당하는 백금계 세포독성 항암제 2종에 파클리탁셀까지 동원해 강도 높은 항암치료를 진행했다. 하지만 종양 크기가 줄어들기는 커녕 환자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설상가상 뇌 MRI(자기공명영상)에서 광범위한 뇌연수막 전이(leptomeningeal seeding)마저 발견됐다. 뇌연수막은 뇌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이다. 뇌연수막 전이가 되면 뇌압이 올라가면서 말을 하지 못하고 의식이 흐려지게 된다. 일반적인 뇌전이보다도 더욱 치료가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강씨는 폐에 물이 찼다고 표현하는 폐부종이 심해지면서 인공호흡기 없이는 숨쉬기 어려운 호흡부전 증상까지 나타나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흔히 콧줄이라 불리는 비위관(nasogastric tube)으로 경장영양식을 공급하며 하루하루 연명해야 하는 실정이었지만 주치의인 이승현 경희대병원·후마니타스암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승현 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가 폐암 진단을 위해 기관지내시경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권욱 기자이승현 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가 폐암 진단을 위해 기관지내시경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권욱 기자



이 교수는 17일 서울경제와 만나 "의사소통이 전혀 안될 정도로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었다"며 "마지막 방법이라 생각하고 표적항암제 신약을 써보기로 결정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강씨의 유전자 검사 소견은 '중간엽상피변성(MET) 엑손(exon) 14 결손(skipping) 변이'. 전체 폐암 환자의 약 3~4% 에서 발견되는 매우 공격적인 유형이다. 미국에서는 2021년 2월 이 변이의 종양억제 효과가 입증된 MET 저해제가 2가지나 허가를 받아 사용 중이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도입 전이었다. 이 교수는 수소문 끝에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의 동정적 사용 승인 프로그램(EAP)에 강씨를 참여시켰다. EAP는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에게 신약 허가 전 의약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본사로부터 MET 저해제 신약 ‘타브렉타(성분명 카프마티닙)’를 조달해 투여하자 중추신경계(CNS) 종양 크기가 눈에 띄게 줄고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극적인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이 교수는 "일주일 만에 자가호흡이 가능한 상태로 호전되어 인공호흡기를 떼고 일반병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며 "신약이 뇌전이를 동반한 MET 변이암에도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전 세계 최초로 입증하며 국제학술지에도 보고됐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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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폐암 4기 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 20여 년새 폐암 치료성적이 눈부시게 개선된 데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도입 효과가 크다. NGS는 종양 조직이나 혈액에서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기술이다. NGS 도입 전에는 암환자의 치료 표적을 찾기 위해 유전자 변이마다 다른 검사를 시행해야 했지만, 이제는 한 번에 수백 개 유전자를 패널로 구성해 고속 분석할 수 있게 됐다. 2017년부터 NGS 기반 유전자패널검사에 건강보험 조건부 선별급여가 적용되며 환자들의 비용 부담도 크게 줄었다. 경희의료원 후마니타스암병원은 2019년 5월 국내 최초로 161가지 유전자를 동시 다발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NGS 키트를 도입해 표준검사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엑스레이에서 폐암 의심 소견을 보이는 환자는 바로 입원시켜 당일 컴퓨터단층촬영(CT), 이튿날 경피적세침흡인 또는 기관지내시경을 통해 조직검사를 시행한다. 4일이면 폐암 진단 후 치료방향이 결정된다. 3주 가량 걸리는 NGS 검사기간도 2주 이내로 단축시키면서 다른 병원들과 차별화에 힘쓰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낮은 병기의 폐암이라도 바로 NGS를 시행하는 추세"라며 “표적항암제는 물론 면역항암제에 대한 치료반응을 확인하고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유전자검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메디컬 인사이드’ 코너는 보건·의료계에서 주목받는 의료진과 병의원의 활약상을 전달하는 연재물입니다. 임상연구·개발과 진료 등의 영역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의료진과 만나 숨겨진 이야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의료기관 내 다양한 진료과와 부서 차원의 협력을 통해 의료계 변화를 선도하는 센터를 직접 찾아가 현장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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