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피로 물든 월드컵"…카타르의 그림자 [Weekly 월드]

최저임금 받고 폭염속 18시간 근무

자다가 사망·심장마비 다수 …피해보상 침묵

40도 넘는 기후에 대규모 에어컨 동원

'역대 최악의 탄소 발자국 남길 것'

성소수자 차별·주류 반입 금지도

전 세계적 비판에도 "정치화 말라"

AP연합뉴스AP연합뉴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이 20일(현지 시간) 막을 올린다. 팬데믹 시기를 보내는 동안 모두가 손꼽아 기다려온 대형 스포츠 이벤트지만 전 세계의 언론과 인권 단체가 카타르를 향해 보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개최지로 선정되는 순간부터 잡음을 낸 것은 물론, 무더운 사막성 기후를 무릅쓰고 잔디 구장 등 대규모 기반시설들을 짓는 과정에서 역대 최악의 탄소 발자국을 기록하고 수많은 노동자를 착취한 사실 등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피에 젖은 월드컵’을 향한 보이콧 선언도 나오는 가운데 카타르 월드컵 대사가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하고 개막 이틀 전 급작스럽게 경기장 내 주류 판매가 금지되는 등 종교 관련 논란도 잇따라 일며 ‘지구촌 축제’에 드리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현대판 노예’? … 경기장 짓던 노동자 수천 명이 목숨 잃었다



2019년 12월 5일(현지 시간) 카타르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의 한 노동자. 인권단체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장기간 근무 중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했고, 열악한 주거 환경과 임금 체불을 경험했다고 지적했다.AP연합뉴스2019년 12월 5일(현지 시간) 카타르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의 한 노동자. 인권단체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장기간 근무 중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했고, 열악한 주거 환경과 임금 체불을 경험했다고 지적했다.AP연합뉴스


카타르는 2010년에 열린 월드컵 유치전에서 개최국으로 선정된 뒤 관계자 매수 등 비리 의혹에 휘말려 개최 기회를 잃을 뻔했다.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 이 2014년에 “개최국 재투표는 없을 것”이라며 선정 여부를 확정함에 따라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7개의 신규 경기장과 함께 공항·철도·도로와 100개 이상의 호텔이 새롭게 건설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0만 명에 달하는 이주 노동자가 허술한 노동법 체제로 인해 착취·학대를 겪고 수천 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권단체 국제엠네스티는 2010년~2019년에 카타르에서 사망한 이주 노동자가 총 1만 5000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는 월드컵 건설 현장에 한정한 통계는 아니지만, 비영리 인권단체 페어스퀘어의 닉 맥기한 창립이사는 “2011년 이후의 사망자 대부분이 월드컵 관련 사업에 고용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가디언지 역시 2010년~2020년 사이 인도·방글라데시·파키스탄·스리랑카·네팔 등 5개국 출신 이주 노동자 67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자체 통계를 발표했다. 이는 카타르 정부가 경기장 건설을 위해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국적 중 최다 비중을 차지한 5개국이기도 하다. 반면 카타르 당국은 2014년 이후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단 3명이었고,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사망 노동자 수 역시 37명에 그쳤다고 주장한다.

카타르 전체 인구 290만 명 중 카타르인은 38만 명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저소득 건설노동자부터 고소득 경영진까지 다양한 외국인 노동자로 이뤄졌다.AP연합뉴스카타르 전체 인구 290만 명 중 카타르인은 38만 명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저소득 건설노동자부터 고소득 경영진까지 다양한 외국인 노동자로 이뤄졌다.AP연합뉴스


카타르 정부가 가혹한 노동과 돌연사 사이의 상관관계를 은폐해 피해보상 책임을 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가디언이 추산한 사망 통계 가운데 69%의 사망 원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심부전’ 또는 ‘수면 중 자연사’로 기록됐다. 카타르 당국은 이를 산업재해 사고사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국제앰네스티는 “이주노동자들은 카타르에 오기 전 건강검진을 받고 신체적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며 최저임금을 받고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하루에 14~18시간 가까이 근무하던 중 갑작스레 사망한 모든 노동자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올해 5월에는 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HRW), 페어스퀘어 등 9개 비영리 인권단체가 카타르에 노동 여건 개선을 요구하지 않은 FIFA 측에도 책임이 있다며 “인권 착취의 고통을 겪은 수십만 이주 노동자들의 여건 개선에 최소 4억 4000달러를 배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월드컵 출전팀들이 받게 되는 상금의 총합 액수다. S&P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FIFA가 이번 대회로 벌어들일 예상 수익은 2002년 월드컵 이래 최대 규모인 65억 달러에 달한다.



말뿐인 탄소 중립... 그린워싱한 ‘최악의 탄소발자국’ 월드컵



관련기사



EPA연합뉴스EPA연합뉴스


카타르와 FIFA는 이번 개최 과정에서 ‘최초의 탄소 중립 월드컵’을 표방했다. 월드컵 개최로 배출될 탄소량은 총 360만 톤으로 추정되지만 녹지 건설과 태양광 발전, 전기 버스 운행 등의 방법으로 이를 모두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 버너스리 영국 랭커스터 대학 교수는 조사 결과 "해당 추정치를 조사해본 결과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1000만 톤이 훨씬 넘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적어도 3배 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길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비영리 환경단체 카본마켓워치(CMW)는 ”올해 카타르가 7개 경기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나온 탄소 배출량을 실제보다 약 8배 낮게 계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련기사:'탄소 중립' 표방한 카타르 월드컵, 실제로도 그럴까)

성소수자 차별·"NO 맥주"국가 종교,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나



이슬람교를 국교로 한 카타르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탄압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카타르는 월드컵 기간에 한해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을 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달 8일 칼리드 살만 카타르 월드컵 대사가 언론에 “동성애는 정신적 손상”이자 “하람(haram, 이슬람교 계율상 금기)”라며 “해롭고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월드컵 대사조차 성소수자 차별을 조장하는 상황에서 카타르를 찾을 성소수자(LGBTQ+) 선수 및 관람객들의 권리 보장이 가능하겠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HRW은 보고서를 내 “2019년~2022년 사이 카타르 경찰이 성소수자 시민을 임의로 구금해 구타한 사례는 6건, 성추행을 저지른 사례는 5건”이라며 차별과 폭력이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HRW은 “경찰은 이들에게 '부도덕한 행위를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당국이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전환 치료 과정(Conversion therapy, 개인의 성적 지향을 이성애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신치료법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사이비과학으로 판단돼 금지됨)에 참여하도록 요구했다는 보고도 이어졌다.



개막을 이틀 남긴 18일에는 경기장은 물론 경기장 주변 주류 판매가 금지됐다. FIFA는 이날 “개최국과의 논의 결과 월드컵 기간에 경기장 주변 주류 판매점을 제거한다”고 밝혔다. 당초 수도인 도하 시내의 일부 ‘팬 구역’에서 주류 판매를 허용하고 음주 가능 시간대도 지정했지만 이를 개막 직전에 뒤엎은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월드컵 경기에서 맥주 판매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보유한 FIFA 후원사 버드와이저가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월드컵 보이콧 움직임에…"스포츠 정치화하지 말라"



13일(현지시간) 분데스리가 SC 프라이부르크와 FC 유니온 베를린의 경기가 열린 독일 프라이부르크 유로파파크 스타디움에 '보이콧 카타르 2022'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AP연합뉴스13일(현지시간) 분데스리가 SC 프라이부르크와 FC 유니온 베를린의 경기가 열린 독일 프라이부르크 유로파파크 스타디움에 '보이콧 카타르 2022'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호주 축구 대표팀은 지난달 월드컵 출전국 중 가장 먼저 카타르의 인권 상황을 비판했다.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처우 개선 방안과 동성애를 범죄로 취급하지 말 것 등을 카타르 정부에 요구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어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국인 프랑스에서는 파리, 릴, 마르세유, 스트라스부르 등 6개 이상의 주요 도시가 공공 장소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하는 공간 및 팬 존을 마련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영국 런던과 룩셈부르크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밖에 네덜란드, 웨일스 등 유럽 9개국 선수단은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의미의 무지개색 하트 모양 완장을 차기로 했으며 덴마크 대표팀은 인권 실태에 항의하는 의미로 ‘올블랙’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

FIFA는 당장의 논란 진화에 급급한 모습이다. FIFA는 이달 4일 카타르 월드컵에 참여한 32개국에 “축구는 이념적, 정치적 싸움에 휘말려선 안 된다”며 “이제 축구에 집중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이에 유럽 10개국 축구협회는 공동성명을 내고 "인권은 보편적이고 어디에서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축구가 지속 가능하고 진보적인 변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전 세계적인 인권 문제 비판을 덮으려는 FIFA와 카타르의 태도가 오히려 ‘역사상 가장 정치화된 월드컵’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디언지는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우리가 축구에만 집중하기를 원한다. 많은 이들도 이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의 영향은 대차대조표나 경기 속 명예로운 득점으로만 측정될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삶 속에서 가려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형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