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한 관련 매뉴얼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개정된 경찰청의 ‘공연장·경기장 안전사고 위기 대응 실무 매뉴얼’에는 다중 밀집 인파 사고에 대해 참고할 만한 대응 체계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인파가 모이는 행사에 대한 유사 매뉴얼이 있었던 만큼 사전 대응 의지만 있었다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공개된 장소에서 개최되는 축제의 경우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 및 ‘국가위기관리지침’에 명시된 재난 유형에 해당하지 않아 관련 매뉴얼은 없다”면서도 “공연장·경기장에서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 발생 시 대응하기 위한 ‘공연장·경기장 안전사고 위기 대응 실무 매뉴얼’은 있다”는 설명이 담겨있다. 해당 매뉴얼은 2020년 제정된 뒤 2021년 개정됐는데 한정된 공간에 인파가 모이는 경우에 대한 경찰의 관리 체계와 조치 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매뉴얼은 공연장·경기장 안전사고를 ‘사회재난’으로 규정하고 다수의 인명·재산 피해 등으로 사회적·경제적으로 범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특히 위기 징후 목록에는 ‘안전사고’가 있는데 관람객이 급증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매뉴얼은 인파 급증으로 발생하는 재난에 대한 위기 대응 지침도 명시하고 있다. 대응 방안은 △신속한 상황 보고 및 유관 기관 신속 전파 △현장 초동 조치 및 구조·구급 활동을 위한 교통 통제 △사고 현장 및 병원, 시신 안치소 질서유지 등 총 여덟 가지다. 이번 이태원 참사 이전에도 정부와 경찰의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관련 매뉴얼이 없다’는 해명이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은 ‘다중 운집 행사 안전 관리 매뉴얼’이 2005년 작성돼 2014년 8월 최종 개정됐으나 경찰은 “해당 매뉴얼은 주최자가 있는 경우를 전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매뉴얼보다 중요한 것은 대응 의지다. 이번 이태원 참사 당시 행정안전부는 지역 축제장 안전 관리 매뉴얼에 따라 대규모 인파를 관리할 수 있었으나 주최 측이 없다는 이유로 통제에 나서지 않았다. 서울시 역시 2014년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에 따라 현장 조치 행동 매뉴얼을 만들어 압사 등의 사고에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했으나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매뉴얼을 마련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의지와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서 “사고가 날 때마다 매뉴얼 문제가 제기되지만 지금처럼 매우 기초적인 기본 임무조차 시행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매뉴얼이 만들어져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