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죽음의 현장에 국가 없었다"…이태원 유족 첫 기자회견

이태원 참사 유가족 첫 기자회견

참사 후 심경 및 6가지 요구사항 발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 연합뉴스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줄 알았다면 내 옆에 있을 때 더 안아주고 더 토닥거려줄걸. 사랑한다고 매일매일 말해줄걸. 얼굴 한번 더 만져줄걸…. 무능한 정부에 아들을 뺏겼지만, 엄마는 이제 넋 놓고 눈물만 흘리지 않으려 합니다.” (희생자 이남훈 어머니)



“10월 29일 밤 이태원 도로 한복판 차디찬 죽음의 현장에 국가는 없었습니다. 행안부 장관 이상민, 용산구청장 박희영, 용산경찰서장 이임재, 112치안종합상황실장 류미진에게 꽃다운 우리 아들 딸들 생명의 촛불이 꺼져갈 때 뭐하고 있었냐고 묻고 싶습니다.” (희생자 송은지 아버지)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22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처음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희생자 영장 사진을 품에 꼭 안은 유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자필로 눌러 쓴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을 이어간 유족들은 아들, 딸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끝내 오열했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이 자리에서 현재 심경과 요구사항 6가지를 밝혔다. 유족들이 모여 언론 앞에서 직접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유족 6명은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마친 후 차례대로 입장을 밝혔다.



유족들은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쏟아냈다. 희생자 이상은 씨의 아버지는 손수 써 온 편지를 통해 “엄마,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이승에서의 고통 아픔 다 잊고 잘 가라. 우리 딸이어서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고 흐느꼈다. 그는 “우리 딸 상은이를 대신해 절규한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는 어디 있었는지, 국가는 뭘 했는지 이제 답해야 한다. 제발 한 말씀만 해달라”고 호소했다.

관련기사



희생자 이남훈 씨의 어머니도 아들과의 추억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핸드폰 단축번호 3번에 저장된 아들에게 전화해 ‘몇 시에 들어와? 밥은 먹었어? 냉장고에 아들 좋아하는 삼겹살 사다놨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며 “아들의 비통한 죽음에 대해 내가 원하는 건 그날의 진실과 투명한 조사, 책임 있는 자들의 책임과 사퇴,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정부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철저한 책임 규명을 요구했다. 참사로 희생된 배우 이지한 씨의 어머니는 “이 참사는 초동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어난 인재이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 사건이 분명하다”면서 “범죄를 저지른 어린 아이들도 처벌하는 법이 만들어지는데, 어쩌 잘못한 어른들은 처벌하지 않는거냐”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보낼 편지를 낭독하며 “(책임 있는 자들의 처벌을) 간절히 부탁하고 또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희생자 이민아(25) 씨의 아버지 역시 “이 참사, 이 비극의 시작은 13만명이 모이는 인파 군중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당일 경찰이 집회 대처와 대통령실 경호 경비에 우선적으로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시민 안전이 아니라, 집회 및 경호 관리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민변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태스크포스(TF)’가 유가족과 몇 차례 간담회를 가진 끝에 마련됐다. TF 팀장 윤복남 변호사는 유족을 대변해 “얼마를 준다한들 아들이 살아오고 딸이 살아올 수 있냐”며 “정부에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는게 선행되지 않으면 금전적 배상만으로 끝날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족들에 대한 정부 지원이 금전적 배상에만 맞춰진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유가족들과 논의를 거쳐 만든 요구 방안을 밝혔다. 여기에는 정부의 △진정한 사과 △성역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 등 모두 6가지 내용이 담겼다.

윤 변호사는 “지금까지 34명의 희생자의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고, 다른 유가족들도 어제 오늘 민변으로 계속 연락이 오고 있다”며 “유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 전체 158명 유가족이 서로 만나서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라고 밝혔다.


김남명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