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금산분리 완화, 공정위도 협조해야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금산분리 본래 취지와는 무관한

산업자본 의결권 행사까지 제한

금융위와 엇박자 땐 성과 어려워

법 개정 전이라도 법령 손질해야





금융위원회가 14일 ‘제4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열고 금산분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내년 초 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취임시에 공언했던 것처럼 산업 간 융복합이 활발해지는 빅블러 시대에 걸맞은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금산분리 규제 완화는 금융위의 노력만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대기업 규제 측면에서 금산분리를 다루는 공정거래위원회 규제가 어쩌면 더 까다롭고, 이것이 금융위와 엇박자를 낼 경우 규제 완화는 무의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공정위는 47개 상호출자제한집단 소속 금융보험사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 사이 비금융 계열사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6개 상출집단 소속 13개 금융보험사가 17개 비금융 계열사에 대해 총 89회 의결권을 행사했고, 그중 24건에 대해 위법 여부를 심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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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의 근거는 거대 산업자본이 금융기관을 소유하면 그것이 재벌의 사금고화될 수 있고, 금융기관이 모집한 자금을 금융 본연의 기능이 아니라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지배력 강화에 동원되면 금융 소비자는 물론 국가 경제가 혼란에 빠진다는 논리다. 그런데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재벌 규제’라는 시각을 앞세워 금산분리 본래 취지와는 무관한 의결권 행사까지 제한해 금산분리 완화 움직임에 역행하는 사례도 있어 보인다.

공정거래법 제25조는 상출집단에 속하는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취득 또는 소유하고 있는 국내 계열회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먼저 ‘의결권’은 주주의 공익권(共益權)인 동시에 자익권(自益權)으로서 재산권적 성질을 가진다. 이를 제한할 때는 헌법상 사유재산권인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게 되므로 지극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식별이다. 특히 산업 간 융복합 상황에서 대상 활동이 금융업에 해당하는지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르면 금융업은 ‘… 모집한 자금을 자기계정으로 유가증권 및 기타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기관 등이 수행하는 산업활동’으로 정의돼 있고, 영업은 타인을 대상으로 동종의 영리 행위를 계속·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외부 자금을 모집할 자격이 없는 일반 기업이 ‘자기 자산’을 타 회사 주식이나 펀드 등에 투자하고 배당을 받는 것은 금융을 활용하는 소비자에 불과하다. 이런 기업을 금융업을 영위하는 금융회사로 봐서는 안 된다. 자금 모집이 없고, 자금을 중개하는 계속·반복적 영업활동이 없으며 여느 기업처럼 여유 자금을 투자한 것에 불과한 경우는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의 대상인 금융업자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 중요한 것이다. 사실 이는 공정거래법령에 이미 규정됐어야 할 것이나 입법조차 섬세하지 못했다. 과거 한국표준산업분류 개정시 지주회사의 의결권 행사가 금지되는 상황을 초래했다가 한바탕 소동 끝에 부랴부랴 법을 개정한 전례도 있다.

정부는 규제 혁신을 통한 경제 활력 제고 및 자유롭고 효율적인 시장경제 조성을 국정과제로 공표했다. 금산분리 완화·폐지가 그 핵심에 있다. 법 집행기관은 법률 개정 전이라도 세심하고 사려 깊은 법령 해석을 통해 기본권인 재산권의 과도한 침해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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