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 서울경기지부 조합원들은 이날 오전 10시 예정된 파업 출정식에 참가하기 위해 9시 30분께부터 의왕 ICD 1터미널 앞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100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이 몰리면서 인근 도로는 교통 체증을 빚기도 했다.
화물연대가 집회 신고를 낸 1터미널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대규모 경력을 싣기 위한 경찰 버스와 조합원들의 대형 화물차가 뒤엉키면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화물연대는 1터미널 앞 4차로를 모두 막고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제도 적용 차종·품목 확대 등을 요구했다. 화물연대는 전국적으로 조합원 2만 5000명이 파업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이날 총파업에서 별다른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고 경고한 만큼 긴장감이 적지 않았다. 화물연대는 일몰제 완전 폐지에 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보고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며 여론전을 이어갔다. 파업 현장인 1터미널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 곳곳에는 대규모 경력이 배치됐지만 대화경찰과 일부 형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0~30m 떨어진 곳에서 출정식을 지켜봤다. 특히 기동대는 파업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멀찌감치 떨어진 길목에서 대기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화물연대 측도 경찰의 통제를 따르며 목소리를 냈다. 출정식은 개회식, 대회사, 투쟁 발언, 결의문 낭독, 2터미널 행진 순서로 진행됐다. 이날 당장은 경찰이 우려했던 비조합원 차량 운송 방해, 기사 폭행, 차량 손괴 등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2터미널로 행진 도중 비조합원 화물 차량을 향한 욕설과 야유가 이어지기도 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확대, 가자 총파업으로’라는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조합원들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등의 구호를 반복했다.
특히 이들의 요구인 안전운임제 확대가 정부와 국회의 역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만큼 여론전으로 파업을 이어가려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이들은 정부와 야당을 비판하는 정치적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다.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정부와 여당은 자본과 한 몸이 돼 화물 노동자를 우롱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화물 노동자는 죽을 때까지 자본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재 서울경기지역본부장은 “여당은 자본에 얼마나 많은 정치 자금을 받은 거냐”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6월 8일간의 총파업으로 산업계 피해가 약 2조 원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시멘트·철강 등 주요 산업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의왕 ICD는 이 중에서도 전체 부지가 75만 ㎡로 규모가 가장 큰 수도권 물류 중심지다. 매년 137만 TEU가 오간다.
실제 이날 인천항 화물 터미널의 화물 반출입량이 전날의 절반 아래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집계한 인천항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4200TEU로 전날 같은 시간의 1만 931TEU보다 61.6% 줄었다. 이날 오전 집계 때는 화물 반출입량 등이 평상시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으나 오후 들어 파업이 본격화하면서 화물 운송이 일부 차질을 빚고 있다.
한편 올해 6월 총파업 이후 화물연대와 정부의 갈등은 봉합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화물연대는 국토부가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원 장관은 전날 한 인터뷰에서 “화물연대와 물밑 대화를 진행하던 중에 돌연 약속을 깨고 총파업에 들어갔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본부장은 “원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화물연대와 35회 만나서 대화했다고 했지만 우리와 실제로 만난 것은 3번밖에 되지 않는다”며 “정부와 여당은 새빨간 거짓말을 밥 먹듯이 반복하고 있다”고 대립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