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예산안 해 넘기면 정부 '셧다운'…어린이·장애인 지원부터 끊긴다

■사상 초유 '준예산' 편성 땐 사회·경제 대혼란

법률 근거한 의무지출만 집행 가능

보육료·취약층 지원금 등 올스톱

SOC도 중단돼 일자리 27만개 증발

최악 땐 韓 신인도 추락·신용 강등

자금유출 → 환율급등 도미노 위기

서울의 한 건설 공사 현장 앞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연합뉴스서울의 한 건설 공사 현장 앞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연합뉴스




새해 벽두인 2023년 1월 2일 오전 7시, 서울 종로구에 사는 주부 김유진(가명·36) 씨는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하다 휴대폰 문자를 보고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 매달 정부 지원으로 전액 지급되던 어린이집 보육료 43만 9000원이 이달부터 본인 부담으로 바뀌어 만약 체납될 경우 어린이집 등원이 어려울 수 있다는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은 뒤 직장을 그만두고 빠듯한 살림살이를 꾸려왔던 김 씨로서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한 치 양보 없는 극한 정쟁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준예산’ 편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준예산은 국회가 회계 연도 개시일(1월 1일) 전까지 예산을 확정하지 못할 경우 당해 연도 예산을 전년도에 준해 잠정 집행하는 것으로 사실상 정부 ‘셧다운’으로 통한다. 실제 준예산이 편성될 경우 정부가 쓸 수 있는 예산은 법률상 의무지출과 기관 운영비 등으로만 제한된다. 내년 기준 정부 예산안 639조 원 중 약 280조 원의 지출이 막히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지출이 제한되는 예산에는 어린이집 보육료와 장애인 지원, 일자리 창출이 많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등이 포함된다. 준예산 편성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재정 당국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상당수 끊길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정부가 지급하는 기초연금 같은 지원금은 정부 의무지출에 포함돼 있어 준예산 편성 후에도 올해처럼 지원이 가능하지만 법에 의무 조항이 없는 예산들은 줄줄이 지급 중단 사태에 빠지게 된다.





희귀 유전성 질환인 뇌전증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일곱 살짜리 딸을 둔 정지혜(38·가명) 씨도 이런 사례다. 사실상 의무교육을 받기 어려운 환아들은 그동안 정부 지원금으로 아이들을 집에서 홈스쿨링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지급한 133만 3000원의 지원금에 본인 부담금 13만 3000원을 더해 학습지도사 급여를 주는 식이다. 하지만 준예산 사태가 시작되면 지원금은 모두 중단된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장애인 활동 지원 등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편성한 예산은 5조 2045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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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정부는 일단 자부담으로 비용을 내면 추후 예산 정상화 이후 환급해준다고 할 가능성이 크지만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중증 질병 아동 가정의 환경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준예산은 일자리 취약계층에도 생존의 위기를 안길 수 있다. 고용 창출이 가장 큰 정부의 SOC 공사도 준예산 체제에서는 모두 중단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퇴직한 박영수(61·가명) 씨는 준예산 사태가 터진 뒤 휴대폰 구인 애플리케이션을 들여다보는 게 주요 일과가 돼버렸다. 올해까지는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었지만 2023년 1월 2일부터는 모든 관급 공사 현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안에서 정부가 편성한 SOC 예산은 25조 1000억 원이다. SOC 예산 1조 원당 취업유발효과를 약 1만 1000명(국토연구원)으로 가정해 취업 인원 수를 단순 계산해보면 약 27만 6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셈이다.

중소 건설사 사장 박광영(58·가명) 씨도 정부의 SOC 예산 지출 중단 이후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대기업 산하 건설사들이 발행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금리가 20% 넘게 치솟으면서 하청 건설사들은 매일 부도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 예산으로 신규 노선 확장 등을 검토하고 있는 GTX B·C 노선들도 연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사태는 준예산 편성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까지 추락하는 것이다. 만약 연말까지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주요 외신들이 ‘한국 정부 셧다운’이라는 제목의 긴급 기사를 타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희생양을 찾는 해외 투기 자본들이 우리나라를 공격해올 수 있다. 피치와 같은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들도 당장 신용등급 재평가에 들어가고 만약 등급이 강등될 경우 ‘국채금리 인상(국채값 하락)→해외 자금 이탈→환율 인상(원화 값 하락)’의 위기가 연이어 터져 나오게 된다. 성명재 홍익대 교수는 “과거 미국도 셧다운 사태 때마다 단기적으로 시장이 흔들렸다”며 “준예산 사태가 오면 국가 신인도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불확실성 확대로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세종=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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