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에서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확대하는 내용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9일 서울경제 취재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과 정부는 최근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발의한 K칩스법에서 해당 조항을 제외한다는 데 의견 접근을 이뤘다. 국토교통부와 교육부가 야당의 입장을 거들어 K칩스법 후퇴를 주도하고 산업통상자원부도 이에 동의한 것은 더욱 황당하고 충격적이다.
유럽연합(EU)은 최근 27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430억 유로(약 60조 원) 규모의 지원을 골자로 한 ‘유럽반도체지원법’ 제정에 합의하며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 가세했다. 현재 8%가량인 유럽의 글로벌 반도체 생산 비중을 2030년까지 20%까지 확대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 첫발을 뗀 것이다. 미국은 2800억 달러(약 370조 원)에 달하는 각종 보조금과 조세 지원을 담은 ‘반도체칩·과학법’ 공포에 이어 추가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앞세워 일부 반도체 품목에서 한국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대만은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에 세액 25%를 공제해주는 법을 만들었다. 일본은 ‘경제안보법’을 통해 반도체 생산에 국비 8000억 엔(약 8조 원)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잖아도 K칩스법은 R&D 세액공제율이 미국·대만 등보다 낮아 경쟁에 불리하다. 그런데도 K칩스법 처리를 넉 달이나 지연시키다 인재 양성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까지 도려내 ‘반쪽’으로 만들어버리면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된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미국·중국·일본·유럽·대만 등의 자국 업체 지원 경쟁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 국회와 정부는 ‘무늬만 반도체지원법’이 아니라 경쟁국들을 압도할 수 있는 파격적 내용의 지원법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