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우탄을 만나기 위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으로 갔다. 오랑우탄 서식지 방문은 흥미롭긴 했으나 실망과 걱정을 함께 안겼다. 구경거리로 전락한 오랑우탄은 사람들에게 제한 없이 접근했고, 급식소에서 제공되는 음식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야생성의 상실과 의존의 습관화는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지 않게 했다. 그런 행동이 건강과 생명에 위협이 될 줄은 오랑우탄도 사람도, 누구도 몰랐다.
“유전적으로 유사한 인간과 오랑우탄 간에도 감염병이 실제로 전염되고 있다.”
고릴라와 침팬지도 마찬가지다. 인간과의 잦은 접촉이 대형 유인원 집단의 전염병 발생을 초래했다. 호흡기 질환, 인간 단순포진바이러스, 홍역 유사 질환 등 인간에게서 전파된 다양한 질병을 유인원들이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콩고공화국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고릴라에 대한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90~95%에 달했다. 콩고 서부지역 고릴라가 몰살 당했다.
캐나다의 수의사이자 야생동물 사진작가인 릭 퀸이 쓴 ‘우리들은 닮았다’는 자연 서식지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대형 유인원의 생활을 사진과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7년에 걸쳐 아프리카 7개국과 인도네시아 섬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유인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행의 과정과 현지에 입수한 정보, 경험들을 상세히 기록해 이 보고서 같은 책이 탄생했다.
대형 유인원은 인간과 많이 닮았다. 저자에 따르면 200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고대 유인원은 ‘긴팔원숭이과’와 ‘사람과’로 분화했다. 사람과에 바로 대형 유인원들이 속한다. 1400만~1600만 년 전에 오랑우탄이 사람과에서 맨 먼저 분리됐다. 900만 년 전쯤에 고릴라가 분화했으며, 마지막으로 700만~800만년 전 무렵 침팬지와 보노보의 조상이 인간과 갈라졌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인간DNA와 98.4% 일치한다. 고릴라는 97.7%, 오랑우탄은 96.4%가 맞아 떨어진다.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흡사한 동물이라는 뜻이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고 할 수 있건만, 인간 탓에 대형 유인원들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 오랑우탄과 고릴라는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심각한 멸종위기종’이고, 침팬지와 보노보는 ‘멸종위기종’이다. 저자가 책을 쓴 진짜 이유다.
이들 몸집 큰 유인원들은 인간이 퍼뜨린 전염병으로 죽어갈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무자비함 때문에 살해되기도 했다. 인간은 식용 고기를 확보하기 위해 대형 유인원을 사냥했고, 애완동물로 어린 새끼를 밀거래하는 과정에서 그 어미를 죽이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인간의 자원 개발과 자연 파괴다.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주석·텅스텐을 채취하거나 팜유를 얻기 위해 기름아쟈나무 경작지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원시림이 사라져갔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로 사람을 의미하는 오랑(orang)과 숲을 뜻하는 후탄(hutan)이 합쳐져 이름 붙은 오랑우탄은 서식지를 잃었고, 식량이 부족해졌다. 먹이를 찾아 인근 농장을 습격했다. 사람과 유전적으로 흡사하고 먹거리도 비슷한 오랑우탄이 사람들 손에 죽어 나갔다. 1999년부터 2015년 사이에 10만 마리의 보르네오오랑우탄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평균 약 2000~3000마리의 오랑우탄이 살해됐다고 한다. 배가 고파 먹이를 찾으려 나섰을 뿐인데….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 이 책의 서문을 썼다.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고 무리지어 사회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학자다. 구달은 이 책에 대해 “이 멋진 동물,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살아있는 친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높이고, 절망적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얼마나 긴밀히 서로 연관돼 있는지를 보여준다”면서 “지구라는 행성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아무리 작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뭔가를 할 수 있으며, 또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멸종위기에 처한 대형 유인원을 구하기 위해 당장 행동하자고 촉구한다. 유인원 보호단체에 직접 지원할 수도 있고, 유인원 보호에 도움되는 제품을 구매하는 방법도 있다. 그는 “우리 인간이 그리 멀지 않은 가족의 임박한 죽음에 연루돼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 생애에 그들이 멸종될 가능성이 점점 더 현실화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와 닮은 그들이 살 수 없는 곳이라면, 머지않아 우리 또한 살기 어려운 곳이 될 것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원제는 ‘Just like us’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