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남아도는 모유 나눔, 500g 이른둥이들엔 '기적의 생명줄'

[메디컬 인사이드] 정성훈 강동경희대병원 모유은행장

저체중·조산아에 흔한 괴사성 장염

모유수유땐 발생 '0'…예방효과 탁월

모유부족 산모, 기증이 유일한 해법

이른둥이 출생 늘어나며 공급 달려

"지방거점 모유은행 설립 지원 필요"

정성훈 강동경희대병원 모유은행장(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이른둥이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모유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호재기자정성훈 강동경희대병원 모유은행장(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이른둥이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모유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소은이 볼살이 통통하게 올랐네요. 우유를 잘 먹나봐요. "



올 8월 출생 4개월차 소은양(가명)의 부모님이 퇴원을 앞두고 강동경희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을 찾았다. 지난 5월 응급 제왕절개로 태어난 소은이는 출생 직후부터 꼬박 137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이전까지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었던 소은이의 엄마는 임신 23주 하루가 되던 어느 날 급작스러운 조기 양막파열이 발생해 예정일보다 출산을 17주 가량 앞당졌다. 또래 보다 조금 일찍 세상 밖으로 나온 소은이의 출생 당시 몸무게는 불과 520g이었다.

임신 24주 이하인 신생아의 평균 생존율은 20% 남짓이다. 태아의 폐성숙은 임신 말기인 34주 이후에 완성된다. 소은이처럼 임신기간이 37주 미만이거나 출생 당시 체중이 2.5kg이 채 되지 않는 이른둥이들은 폐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탓에 스스로 호흡하기 힘들다. 대부분 출생 직후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져 인공호흡기와 산소치료를 받는다. 오랜 기간 높은 농도의 산소와 인공호흡기의 높은 압력에 노출되다 보면 기관지폐이형성증(bronchopulmonary dysplasia)이 발생하기 쉽다. 이외에도 뇌실 내 출혈, 동맥관개존증, 미숙아 망막증 등 다양한 전신 합병증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 소은이의 주치의를 맡았던 정성훈 강동경희대병원 모유은행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이른둥이에게 가장 흔히 나타나는 합병증 중 하나가 괴사성 장염"이라며 "임신주수가 낮을수록 발생률이 높다"고 말했다. 괴사성 장염이 생겨 괴사된 소장 또는 대장 조직을 잘라내고 다시 잇는 수술을 여러 차례 받다보면 단장증후군(short bowel syndrome)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생후 2~3주는 괴사성 대장염 발생 위험이 유독 높아지는 시기다. 정 교수는 "임신주수 24주를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기들에겐 무조건 생후 3주까지 모유수유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며 "위험 시기를 무사히 넘기면 열량 보충을 위해 고칼로리의 분유를 섞어 먹이는 혼합 수유를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강동경희대병원 모유은행 코디네이터가 영하 20도에서 보관중이던 기증 모유를 꺼내고 있다. /이호재기자강동경희대병원 모유은행 코디네이터가 영하 20도에서 보관중이던 기증 모유를 꺼내고 있다. /이호재기자



소은이처럼 면역력이 약한 이른둥이들에게는 치명적인 괴사성 장염 발생 위험을 낮추기 때문에 모유가 생명줄과도 같다. 문제는 이른둥이를 출산한 산모는 스트레스로 인해 모유수유를 시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 아이가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해서 내내 떨어져 있다보니 모유량이 아이가 먹는 양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소은이 역시 엄마 모유를 먹지 못할 처지였지만 강동경희대병원 모자보건센터가 운영하는 모유은행으로부터 기증모유를 제공받으며 무럭무럭 체중을 키웠다. 정 교수는 "괴사성 장염 발생은 물론 수술 한번 받지 않고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모유"라며 "소은이 뿐 아니라 2015년 이후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태어난 이른둥이 가운데 괴사성 대장염은 단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실제 임상에서는 저체중으로 태어난 쌍둥이 2명 중 모유를 먹인 1명에서만 괴사성 장염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예방 효과가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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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은행은 건강한 수유 여성으로부터 잉여모유를 기증받아 저온 살균 등의 공정을 거쳐 이른둥이에게 제공하는 기관이다. 강동경희대병원은 2006년 개원 당시부터 16년째 모유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유일한 모유은행이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강동경희대병원에서 기증모유를 제공받은 이른둥이는 총 1943명에 달한다.

지난해 국내 저체중아 비율(2.5kg 미만)은 7.2%로 10년새 2.0%포인트 증가했다. 소은이와 같은 극소 저체중아(1.5kg 미만) 비율도 0.8%까지 높아졌다. 매년 곤두박질 치는 출생률과 달리 이른둥이 출생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기증모유를 이용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한 곳이 전국에서 밀려드는 기증모유 수요를 충족시키키는 힘든 게 사실이다. 일부 지역은 배송거리가 너무 멀어 보내지 못해 안타까울 때도 많다. 정 교수는 "충분한 기증모유를 공급하려면 기증자 확보가 필수다. 전화 한 통이면 이른둥이의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에 동참할 수 있다"며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 거점에도 모유은행이 설립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메디컬 인사이드’ 코너는 보건·의료계에서 주목받는 의료진과 병의원의 활약상을 전달하는 연재물입니다. 임상연구·개발과 진료 등의 영역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의료진과 만나 숨겨진 이야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의료기관 내 다양한 진료과와 부서 차원의 협력을 통해 의료계 변화를 선도하는 센터를 직접 찾아가 현장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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