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퀴틴에 의한 단백질 분해과정을 규명한 공로로 2004년 노벨 화학상을 거머쥔 아론 치에하 노베르는 “한 가지 분야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의외의 조언을 내놓았다. “이제 인간의 수명이 더욱 길어졌는데 의학이든 뭐든 다른 사람이 그러라고 했다 해서 앞으로 50년이나 60년을 그 분야만 공부하면서 사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젊은이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남은 일생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은 자타공인 세계 최고 권위자다. 그들의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연구와 발견은 ‘혁명’이라 불린다. 신간 ‘스톡홀름에서 걸려온 전화’는 그 노벨상 수상자들을 만나 ‘과학과 인생’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담고 있다. “스톡홀름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과학자는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고 서문 첫 문장을 쓴 저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뇌과학자다. 그는 1951년부터 매년 독일 린다우에서 세대 간 소통과 학문 교류를 위해 노벨상 수상자들과 35세 미만의 젊은 과학자를 한 자리에 모으는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회의’에 제64회 생리학·의학 분야 젊은 과학자로 선정됐다. 당시 회의 참석을 계기로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들과 인터뷰 한 것이 한 권의 책으로 이어졌다. 과학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 물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이 이 책의 특별함이다.
화학반응 경로에 관한 이론으로 198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로알드 호프만은 “과학에만 지나치게 몰두하지 말고 인문학과 예술, 외국어 강의를 많이 들어두라”고 조언하며,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는 힘을 기르라”고 강조했다. 인생에 대한 조언 뿐만 아니라 과학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세포의 물질운송 메커니즘을 규명한 공로로 201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랜디 셰크먼은 논문 피인용 지수인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를 기준으로 학문 연구를 평가하는 일의 폐단을 지적했다.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 주요 학술지가 어떤 논문을 게재할지 결정할 때 이 수치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셰크먼은 그런 숫자로 학문 연구를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스톡홀름에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노벨상 메달과 증서는 어디에 보관하는지, 롤모델은 누구였는지 등 위대한 수상자들의 내밀한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화들이 가득하다. 결론은 이렇다. “과학은 쉬워요, 인생이 어렵지.”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