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LG아트센터 서울에 들어가면 숲속이 연상되는 향을 맡을 수 있다.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 내부, 타원형의 원통을 가로로 눕힌 듯한 ‘튜브(TUBE)’에 들어가면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무게감은 있되 머리 아프지 않은 향이 반긴다. 이 향기의 정체는 LG아트센터 서울이 10월 개관과 더불어 시그니처로 밀고 있는 ‘136’ 향이다. LG아트센터와 LG생활건강 센베리퍼퓸하우스가 1년간 협업해 만들었다. 대형 공연장 중에서 이른바 ‘향기 마케팅’을 시도하는 일이 LG아트센터가 처음이어서 공연계 안팎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김지인 LG아트센터 홍보마케팅팀장이다. 그는 1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공연장이 문을 닫는 동안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너무나 많은데 공연장에 왜 와야 하지’라는 생각이 든 게 출발”이라고 돌아봤다. 팬데믹 이후 관람객들이 공연장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어떤 경험을 안겨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한다. 그러다가 휴가 중 머물렀던 숙소에서 좋은 향기를 맡은 기억을 떠올렸고 이미 숙박 플랫폼을 통해 각 숙소별 향을 디퓨저 등의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팀장은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 기획안을 제안했고 통과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공연 콘텐츠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경험을 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회의를 거쳐 향기의 콘셉트를 잡았고 향의 이름은 LG아트센터 서울이 주변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자 하는 소망을 담아 건물의 주소인 ‘마곡중앙로 136’에서 따왔다. 그후 과정이 상당히 지난했다고 김 팀장은 기억한다. 우선 네 차례에 걸쳐 LG생활건강 측과 샘플을 갖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을 거쳤다. 4~5개의 후보군 가운데 적정한 향의 범위를 좁히고 농도와 비율의 미세 조정도 계속됐다. 어떻게 분사할지도 과제였다. 136 향은 건물 내부 공조 시스템을 통해 분사되는데 공연장, 사무 공간에 향이 흘러가지 않도록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 튜브에는 종일 향을 맡을 수 있지만 공연장 내부에는 흘러가지 않고 로비에서도 공연 4시간 전부터 분사를 중지하는 메커니즘을 완성했다.
김 팀장은 “LG생활건강 측에서도 이 과정을 알았으면 시도도 못했을 텐데 용감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더라”며 “현장에서 만족스러워했다”고 전했다.
관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지난달 관객 대상 자체 설문 결과 62.1%가 제품으로 나오면 구매 의사가 있다고 답했으며 소셜미디어에서도 긍정적 후기가 적잖이 발견된다. 지난달 하순께부터 룸스프레이·디퓨저 등 MD 상품으로도 판매 중이다. 그는 “공연 콘텐츠가 아닌 공간을 상징하는 MD 상품의 사업성을 타진해 보고 싶었다”며 “공연은 안 보고 상품만 사러 오는 분도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