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로터리]사랑한다면 떠나라

양향자 의원양향자 의원




해임은 사과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태원 참사 직후 그렇게 썼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통한의 마음을 담은 사과도, 명확한 진상 규명도, 책임자의 해임도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이태원역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를 못했다. 위로 받지 못한 유가족들의 절규는 외롭게 남겨졌다. 정부는 국민에게, 또 역사에 용서 받을 수 있을까.

지난 주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에 찬성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해임안이 가결되자 정국은 다시 얼어붙었다. 대통령은 ‘입장이 없다’고 밝혔고 여당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위원들은 전원 사퇴했다.



158명의 생떼같은 아이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희생됐다. 수사는 밤새 현장에서 분주하게 뛰어다닌 현장 지휘관 주위만 맴돌고 있다. 이들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이 장관 아닌가?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이제 이 장관이 결심해야 한다. 국민을, 윤석열 정부를 위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관련기사



첫째, 공정과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태원 참사는 인재(人災)다. 시간을 돌이킨다면 막을 수 있던 사고다.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 법적 책임은 수사기관이 가릴 일이다. 국민은 정부의 도의적 책임을 요구한다. 장관은 쏙 빠진 채 현장 대응 인력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공정도, 상식도 아니다.

둘째, 공직 사회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서다. 기강은 규율과 법도를 일컫는다. 리더가 책임을 회피하기 시작하면 팀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적극 행정은 사라지고 보신이 최우선 가치가 된다. 장관이 책임을 전가하는 사이 참사 관련 공직자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앞으로 어떤 공무원이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위기 대응 업무를 할 수 있을까.

재발 방지도 허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진상을 철저히 밝혀내고 시스템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 그러나 책임자인 장관이 요지부동이다. 시스템 개편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일과 같다.

셋째, 정치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장관 한 사람의 거취 문제로 국회가 올스톱됐다. 진상 규명, 재발 방지책 마련, 심지어는 예산마저도 극단적인 정쟁의 제물이 됐고 이태원 참사는 피아를 구분짓는 낙인이 돼 유가족과 국민을 욕보이고 있다. 본인의 사퇴로 국회가 정상화되고 국민과 유가족이 위로 받을 수 있다면 열 번이고 백번이고 사퇴해야 옳다. 그것이 ‘폼 나는’ 공직자의 자세다.

태종 3년(1403년) 강풍에 조운선 34척이 침몰해 1000명이 수장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보고를 듣고 태종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 참사의 원인이 담당 관료의 무능이었음에도 “바람이 심한 것을 알면서도 배를 출발시켰으니 이는 내가 백성을 사지(死地)로 내몬 것과 다름없다”며 무한 책임의 자세를 견지했다. 정부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지 않으면 국민이 정부를 지켜줄 책임도 없다. 결단의 시간이다. 윤석열 정부를 사랑하는가? 사랑한다면 떠나라.


박진용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