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공급망 위기 관리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주요 자원의 개발·공급·비축을 망라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자원 공급 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생산·판매는 물론 세율과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도 포함됐다. 공급망 대응 역량 강화는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자원안보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산업부와 조율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이 특별법까지 발의해 주요 자원 공급망 관리 체계 구축에 나선 것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공급망 변동성이 장기간 이어지는 데다 미중 패권 경쟁 등 다양한 요인으로 재발할 수 있어서다.
니켈·리튬·망간이나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경우 지역 편재성이 심하다는 것도 문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차전지 핵심 광물별 수입 1위국 비중 평균치가 77.1%에 달했다. 이는 경쟁국(일본 66.5%, 중국 60%, 독일 51.1%)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주요 생산국이 자원 수출을 무기화할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리튬의 경우 1년 만에 ㎏당 가격이 3만 5000원에서 10만 8000원으로 세 배 이상 급등해 국내 기업들이 수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특별법에는 해외자원개발 확대를 주문하는 내용이 담겼다. 자원 생산 시설에 직접 투자해 자원 수급을 안정시키겠다는 의도다. 특별법 15조에 따르면 산업부 장관은 국내외 핵심 자원 생산 시설을 설치·확충하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또 해외 핵심 광물 생산 기업에 직접 투자하거나 인수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특별법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이명박 정부 이후 10년 가까이 지지부진하던 해외자원개발이 다시 추진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부진했던 해외자원개발을 재추진하기 위해 해외자원개발 예산을 확보하고 자원 관련 공기업들의 전문성과 기술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급망 위기 관리 컨트롤타워는 산업부 산하에 설치될 자원안보위원회가 도맡게 된다. 산업부는 자원안보추진단을 함께 운영해 위원회 업무를 지원한다. 이외에도 국가자원안보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해 핵심 자원의 매장, 생산, 비축, 수출입량, 수급 현황, 가격 등을 모니터링한다.
양 의원은 “최근 전 세계가 유례없는 공급망 변동성에 직면하면서 각국이 자원 확보를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국내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핵심 자원의 개발에서부터 도입·비축·재자원화로 연결되는 새로운 자원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수요의 93%, 핵심 광물 수요의 95%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며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서라도 에너지원별 개별법이 아니라 특별법으로 통합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관리 대상이 되는 ‘핵심 자원’의 범주에는 석유·석탄·도시가스 등 화석연료 외에 광업법에 규정된 광물 전체가 들어갈 예정이다. 2차전지의 주재료인 니켈·리튬·망간은 물론 우라늄도 포함된 개념이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경우 산업부 장관이 고시를 통해 ‘핵심 광물’로 지정해 핵심 자원과 함께 관리한다.
특별법에는 핵심 자원 수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담겼다. 우선 공급 기관을 지정해 비축 물량을 추적 관리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광물의 경우 ‘비상동원광산’으로 지정해 위기 시 생산·판매를 통제한다. 자원안보 위기가 현저하게 우려되는 경우 정부는 핵심 자원의 생산·유통 과정에 개입해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특히 국내 판매 가격에 최고가격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명시해 눈길을 끈다. 비축 물량을 방출하는 방식으로도 단기 가격 급등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다. 다만 자원 가격과 수급 상황은 통상 국제 가격과 연동돼 있어 정부 주도의 가격 통제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법에는 위기 시 자원 유통·소비 과정에 부과되는 세금을 감면할 수 있는 조항도 담겼다. 이에 따라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유가가 급등할 때 교통·에너지·환경세법이 규정하는 탄력세율 범위 이상으로 정부가 세금 감면 조치를 취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특별법에 국가의 재량 범위가 너무 커 자칫 시장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위기 상황이라는 이유로 자원의 유통·판매에 개입하는 경우 민간 업체에 손실을 강제하게 될 수도 있다. 특별법에 국가 개입 시 손실을 보상할 수 있다는 규정이 들어간 것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