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예 부흥을 이끈 제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에게 그림은 정치였다. 정조는 기존의 도화서 화원과 별도로 규장각 안에 ‘차비대령화원’을 설립했고, 그들로 하여금 국왕의 말과 글을 시각화하고 초상화에 해당하는 ‘어진’을 그리게 했다. 유재빈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의 신간 ‘정조와 궁중회화’는 정조가 어떻게 그림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는지를 실제 사례로 들여다봤다. 정조는 선대 왕의 어진을 그리게 해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어진이 현재의 군신관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점에 주목했다. 왕실 관련 유적지를 그리는 ‘사적도’를 통해서는 왕실 역사를 재구성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을 추진했다. 장남 문효세자와 관련된 그림에는 세자의 위상 강화라는 취지를 교묘하게 담았다.
정조의 ‘미술정치’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경기도 화성 현륭원 행차를 그린 ‘화성원행도병’에서 절정을 이룬다. 저자는 이에 대해 “화성 원행 시에 베풀어진 행사를 시간 순서가 아니라 정조가 본래 의도했던 바대로 재배열함으로써 행사 전체의 의미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면서 “일회적인 행사의 기록이 아니라 이상적인 치세의 상징으로 형상화했다”고 분석했다. 3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