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힘 빠진 트럼프, 휘청이는 공화당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중간선거서 예상 밖 공화 부진에

'찬양하던' 보수진영 등 돌렸지만

무능함 알아채고도 일부러 외면한

'비겁함의 대가' 반드시 치를 것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공화당 엘리트들은 실망스러운 중간선거 결과가 나온 후 ‘도널드 트럼프가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한때 트럼프의 나팔수였던 머독 미디어 제국까지 전직 대통령을 박대했다. 정치 기부금과 선거운동 인력 역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쪽으로 몰리고 있다. 그러나 2024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발표한 트럼프는 결코 조용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당 엘리트들의 변심에도 트럼프가 후보지명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경우 자기 자신 이외에 누구에게도 충성심을 보여준 적이 없는 그가 당을 흔들어 놓는 것으로 앙갚음을 하지 않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보다 트럼프 같은 사람이 미국의 양대 정당 가운데 하나를 쥐고 흔든 데 이어 아직껏 자신의 지지 기반을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일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필자는 트럼프가 비난받을 만한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다거나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시도하는 등 선동으로 규정될 만한 많은 행위를 저지른 사실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직도 많은 공화당원들이 지독히 허약한 트럼프를 강력한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일까. 먼저 그의 개인적 성격부터 따져보자. 필자가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지만 군 통수권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성격은 중요한 판단의 근거다. 무릇 대통령은 진실성과 품위를 지녀야 한다. 밀실 안에서 무슨 짓을 하건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성숙하고 자제력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76세인 트럼프는 14세 철부지처럼 처신한다. 그는 종종 자화자찬을 쏟아내다가 곧바로 허튼소리를 내뱉거나 자기연민에 빠져든다.


개인적인 감정 외에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점은 트럼프가 재임 중 보여준 무능이다. 트럼프는 당의 감세 및 반(反)정부 기조와 결별할 다른 종류의 공화당원을 자처하며 2016년 대선에 출마했다. 하지만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그는 미치 매코널의 손에 놀아났다. 그가 주도한 중요한 국내 정책이라고는 오바마케어 폐기와 공화당 표준 이슈인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가 전부였다. 기반 시설 투자 공약은 어떻게 됐나. 물론 공수표로 끝났다. 백악관에서 열리는 기반 시설 주례 회의는 아예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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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정책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김정은은 핵 포기 의사를 슬쩍슬쩍 비쳐가며 트럼프를 속였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무역과 관련해 그를 농락했다. 시진핑은 미국산 물품 구매 약속을 앞세워 트럼프의 관세 인상을 멈춰 세웠다. 물론 시 주석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트럼프의 재임 중 성과는, 특히나 그의 후임자와 비교해볼 때, 미미하기 짝이 없다.

물론 원하던 국내 정책 목표를 모두 달성한 것은 아니지만 조 바이든은 주요 기반 시설 법안과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들 두 건의 법안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유례없는 수준의 지출과 헬스케어 강화 조항을 담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민주당의 중간선거 선전으로 바이든의 성공은 임기 후반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외교정책의 백미는 러시아 침략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연합체를 구성한 것이다. 진주만 공습 이전에 미국이 담당했던 ‘민주주의의 무기고’ 역할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단히 성공적인 외교정책이다. 기술 굴기라는 중국의 야심을 꺾는 데 초점이 맞춰진 바이든의 중국 정책은 트럼프의 조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격적이다. 그럼에도 바이든이 허약하고 현실감 없다는 평가를 받는 데 비해 마지못해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트럼프는 공화당원의 90%가 ‘강력한 지도자’로 추켜세운다.

트럼프 개인숭배는 부분적으로 정치 외적인 힘에 기대고 있다. 과거에 우리는 재계 총수와 정치인들의 품위 있는 행동을 기대했다. 그러나 ‘셀럽’ 문화에 젖은 탓인지 요즘은 야단스레 자기 과시를 해대는 정신 산란한 기업 지도자들의 언행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트럼프와 거리 두기를 시도 중인 공화당 의원들도 지난 수년간 트럼프 이미지를 부풀리는 데 앞장섰다. 공화당 지지층에 정치 정보의 원천 역할을 담당해온 폭스 뉴스는 불과 얼마 전까지 트럼프와 관련해 독재국가의 국영 매체에서나 볼 수 있는 찬양 일색의 방송을 내보냈다. 그뿐 아니다. 트럼프의 본색을 일찌감치 알아챈 공화당 정치인들조차 공산당 정치위원회 위원들이 당 서기장을 입이 마르게 칭송하듯 그를 칭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정치인들이 트럼프를 밀어내려 한다. 아마도 그들은 트럼프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비겁한 행동에 대해 그들 또한 정치적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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