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가구가 넘는 빌라와 오피스텔을 소유한 ‘빌라왕’ 김 모 씨가 급사하면서 전세 보증금 압류,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환급 등 절차를 진행하고 있던 사기 피해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김 씨의 상속인은 한정승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2~3년은 걸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5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들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는 절차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처지에 놓였다. 박소예 법무법인 제하 변호사는 “부동산 소유권이 아직 김 씨에게 남아 있어, 보증금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뿐만 아니라 이미 승소해 경매 절차를 밟고 있는 피해자들도 소유권이 재설정될 때까지 막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도윤 법률사무소 율샘 변호사는 “피해 규모가 워낙 크고 아직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피해자들까지 있어 보증금 반환이 완료되려면 2~3년까지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UG 역시 김 씨에 관한 보증 보험 이행을 중단한 상태다. HUG 관계자는 “보증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김 씨의 재산을 처분해야해 상속인이 설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씨와 관련해 HUG가 보증한 규모는 600억 원으로 보도됐지만 서울경제가 확인한 결과 실제로는 1200억 원이 넘어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김 씨의 선순위 상속인은 김 씨의 노부모로 정해져 있다. 80년생인 김 씨는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노부모는 ‘상속 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 씨는 10월 12일 사망했고 노부모는 같은 달 24일 사망 신고를 했는데, 이때 상속 개시 인지일이 12일인지, 24일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법조계에서는 사망일인 12일이 기준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변호사는 “김 씨 생전에 소송을 진행하면서 소장이 모두 노부모 자택으로 전달돼 상속될 재산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주소지를 부모의 자택으로 등록해놓고 호텔 등에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부모는 한정승인을 하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HUG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HUG 관계자는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 문의한 결과 그런 식으로 답했다”며 “다만 ‘앞으로 연락하지도, 찾아오지도 말라’고 말해 그 사이 결심이 바뀔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한정승인이란 상속될 재산 중 부채 규모를 따져 순자산에 대해서만 채무를 정리하는 과정을 말한다. 노부모가 한정승인을 택하면 부채를 제외한 나머지 자산에 대해서만 전세 보증금이 반환·청산된다. 만약 모든 빚을 정리하고도 자산이 남으면 노부모에게 상속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노부모는 내년 1월 12일까지 한정승인을 할지, 상속을 포기할지 정해야하지만 두 가지 모두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한정승인을 하게 되면 법원에서 자산·부채 규모, 계약 관계 등을 따지는 과정에서 시간이 한참 걸린다. 김 변호사는 “채무, 계약 관계가 워낙 복잡할뿐더러 인지되지 못한 사기도 있어 이를 따지는 데만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속 포기를 택할 경우 바톤은 김 씨의 형제·자매, 4촌까지 넘어간다. 이때 4촌이 만약 상속 여부를 몰랐다면 다시 기한이 연장된다. 4촌까지 상속을 포기하면 법원서 상속 재산관리인을 설정해야 하는데 이것도 통상 수개월이 걸린다.
피해자들은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촉구했다. 김 변호사는 “사건이 워낙 큰 만큼 국토교통부나 국회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를 피해자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