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동산 투자를 크게 줄인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이 내년부터는 이른바 ‘줍줍’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내년에도 고금리 부담이 이어지면서 대출을 끼고 투자 받은 부동산 매물들이 대거 시장에 쏟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그간 비축해뒀던 자금을 활용해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G새마을금고는 최근 LB자산운용·베스타스자산운용과 각각 1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했다. 국내와 해외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블라인드 펀드(투자처를 정하지 않은 대형 펀드)로 대출 만기가 돌아온 부동산 자산에 리파이낸싱(자본 재조달)을 제공하거나 지분 투자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지스자산운용도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특수 상황에 투자하는 가치부가형(밸류애드) 펀드를 결성하고 있다. 일명 구조금융(rescue finance)의 일종으로 투자자를 찾지 못해 부실채권(NPL)으로 전락할 부동산 자산을 사들일 계획이다. 이들 모두 연간 10% 후반대의 수익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부동산 후순위 담보대출금리는 두 자릿수를 넘긴 상황이다.
기관투자가들은 부동산 등 대체자산에 투자할 때 보통 자산 가격의 60~70%를 은행과 증권사로부터 담보대출 받아 매입한다. 그러나 올해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건설 경기가 어려워지고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까지 경색되면서 증권사들이 공격적으로 영업을 늘려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리스크가 부각됐다. 김정현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고금리 환경에서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자산 건전성 관리 부담이 가중되며 부동산 경기 하락 및 경기 침체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실적과 재무 건전성이 저하되고 유동성 대응력이 떨어지는 회사는 신용도에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평소 같으면 이자 수익을 노려 대출 계약을 연장했던 금융기관도 자금을 회수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을 장전한 기관투자가들이 공격적인 신규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서비스 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누적 국내 오피스 빌딩 거래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한 9조 2000억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3연속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으로 역사상 네 번째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 발생하면서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는 부담으로 부동산 자산 가격이 떨어지자 시장에서는 잇따라 매물을 거둬들였다. 하반기에만 서울 명동 화이자타워와 수서 로즈데일 빌딩, 아이콘 역삼, 인터파크 삼성동 빌딩 등의 매각 계획이 줄줄이 철회됐다.
외국계 자금도 투자 재개를 앞두고 있다. 약 5000억 원의 투자금을 든 중국계 사모펀드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은 내년에 가격이 떨어진 국내 부동산을 적극 사들일 계획이다. 지난해 17억 달러(약 1조 9000억 원) 규모의 아시아 부동산 펀드를 조성한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매년 한국 시장 투자 규모를 늘려가는 싱가포르 국부펀드(GIC)도 마찬가지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임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의 중국 이탈이 빨라지면서 대규모 투자자금이 한국 시장을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외국계 기관은 투자 대상에 대한 제한이 적고 펀드 규모가 커서 곧바로 자금을 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