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경쟁서 이기는 것 아닌 이전보다 잘하는 게 발전"

■에세이 '뭐든 해 봐요' 북토크…시각장애 판사 김동현

타인과의 경쟁은 자신 갉아먹어

이전보다 나은 사람 되는 게 중요

좌절 속에도 가능성 찾을 수 있어

내 글로 누군가의 인생 바뀌었으면

김동현 판사김동현 판사




“우리는 무언가를 하면서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고 줄을 세웁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경쟁 속에서 살아가게 되죠. 이 과정에서 발전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갉아먹는 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경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각장애라는 역경을 딛고 법관이 된 김동현(사진) 판사는 서울 길동 북카페도서관 ‘도닥도닥’에서 가진 에세이 ‘뭐든 해 봐요’ 북토크 후 20일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전(前)보다 잘하는 게 발전”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번 북토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첫 책을 출간한 작가의 시작을 응원하기 위한 행사로 기획됐다. 김 판사는 로스쿨 재학 중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었지만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 법관의 자리에 섰다.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 서울시 장애인권옹호기관 변호사를 거쳐 현재는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있다.



그는 시각을 잃었지만 좌절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현재가 바닥이기에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더 떨어질 게 없으니 남은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뿐이다. 좌절이 희망이 되는 순간이었다. 김 판사는 “시력을 잃은 그 상태에서 절망한 채로 계속 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며 “내가 2년만 더 공부하면 최소한 변호사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그것이 결국 나를 바닥에서 끌어내줬다”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남과의 경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더 나은 삶을 위한 자신과의 싸움만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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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왼쪽) 판사가 자신의 에세이 ‘뭐든 해봐요’ 북토크 행사에서 사회를 맡은 이재은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김동현 판사김동현(왼쪽) 판사가 자신의 에세이 ‘뭐든 해봐요’ 북토크 행사에서 사회를 맡은 이재은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김동현 판사


시각장애인 판사·변호사 등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절망을 딛고 희망의 길을 걸어간 이들은 김 판사가 좌절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동인을 제공했다. 스스로 좌절을 극복할 가능성을 매우 높게 봤던 이유다. 김 판사는 “좌절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없다고 했을 때 나타나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희망이 될 수 있다”며 “문제 해결의 방법이 존재하는데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에세이에서 꿈이 있다면 반드시 기회가 찾아오는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이라고 조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마라톤을 좋아한다고 했다.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마라톤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반드시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 뛰면서 같이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마라톤인 셈이다. 그가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면서도 “다른 사람도 같이”라는 첨언을 잊지 않는 것도 달리기가 준 선물이다.

이 때문일까. 김 판사는 자신이 글을 쓰게 된 이유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을 쓸 때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며 “내 글을 읽고 누군가의 인생이 약간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활달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그도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많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시각장애인은 혼자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없다. 드라마를 보고 싶어도 화면 해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것들이다. 자신이 일하는 사법 시스템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종이로 된 기록은 읽을 수가 없다. 정보 접근에 큰 장애가 있는 것이다. 김 판사는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유모차를 끄는 사람도,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할머니도, 다리가 불편한 사람도 모두 다 이용할 수 있다”며 “장애인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모두가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장애는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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