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반(反)린치법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가수이자 시인 밥 딜런은 1962년 발표한 곡 ‘에밋 틸의 죽음’에서 억울하게 살해 당한 흑인 소년의 이야기를 읊조렸다. 소년의 죽음은 1950~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이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흑인들은 스스로를 ‘에밋 틸 세대’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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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8월 20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살던 14세 소년 에밋 틸은 사촌들을 만나기 위해 미시시피주 머니시로 향했다. 어머니는 만류했지만 첫 여행을 떠나는 틸은 잔뜩 들떠 있었다. 사흘 뒤인 24일 오후 소년은 사촌들과 어울려 식료품점에 들렀다. 백인 부부 로이 브라이언트와 캐럴린 브라이언트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풍선껌을 고른 에밋은 실수로 계산대가 아닌 캐럴린의 손을 건드렸고 휘파람을 불었다. 며칠 뒤인 28일 새벽 사촌 집에서 잠자고 있던 에밋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로이와 그의 의붓형제 마일럼에게 납치됐다. 그리고 사흘 뒤인 31일 인근 강가에서 잔인하게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아들의 참혹한 죽음을 맞닥뜨린 어머니 메이미는 장례 기간 관 뚜껑을 열어 아들의 시신을 공개했다. 시신을 촬영한 사진이 잡지에 실리면서 사건은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로이와 마일럼은 체포돼 재판을 받았지만 전원 백인인 배심원단에 의해 무죄로 풀려났다.

미국 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및 폭행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미국 의회가 올 초 ‘반(反)린치법’을 의결하고 3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 법을 공포한 배경이다. 이 법안의 골자는 형사처벌 권한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인에게 임의로 가하는 사적 형벌, 즉 린치를 ‘인종차별 또는 편견에 근거한 범죄’로 규정하고 최대 징역 30년형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 린치 방지 입법이 숱하게 시도됐지만 최종 승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미국 의회가 반린치법 제정의 촉매 역할을 한 틸 모자에게 ‘의회 황금 훈장’을 사후 수여했다는 소식이다. 자유와 인권은 인류 보편의 가치이지만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67년 전 열네 살 흑인 소년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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