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 5기가 제때 가동됐다면 한국전력이 적자 7조 원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은 천문학적인 탈원전 비용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발전단가가 낮은 원전 대신 전쟁 여파로 급등했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에 의존한 결과 그만큼 한전의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탈원전 정책에 따른 손실인 LNG 발전과 원자력발전의 정산 금액 차이는 2017년 3745억 원에서 올해 7조 원으로 늘어났다.
26일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17년 이후 한전이 탈원전 정책으로 추가로 부담한 금액이 13조 원이 넘는다. 이는 2015년 수립된 7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건설 중인 원전 5기가 예정대로 준공돼 전력 생산에 나서고 이용률 80%를 기록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LNG보다 더 비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가 이들 원전을 대체했다고 가정하면 탈원전으로 한전이 입게 되는 손실은 13조 원보다 더 불어나게 된다.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역시 뼈아프다. 전쟁과 고유가로 전력도매가격(SMP)상한제라는 극약 처방까지 내려야 할 정도로 올해 전력 상황이 녹록지 않았는데, 원래 계획대로 올 12월까지 운영을 이어갔다면 올여름 전력계통망의 운영 부담을 크게 덜어줬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탈원전으로 값비싼 화석연료인 천연가스 수입도 크게 늘었다. 천연가스 1톤당 6582㎾h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탈원전으로 줄어든 원전의 올해 생산전력량 387억 ㎾h를 전부 LNG 발전으로 대체했다고 가정하면 약 590만 톤의 LNG가 추가로 필요하게 된다. 올해 LNG 1톤의 가격이 약 1040달러인 만큼 약 60억 달러(약 8조 원)의 국부가 해외에 유출된 셈이다. 2017년부터 계산하면 LNG 2238만 톤, 약 30조 원어치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탈원전 정책은 경제성도, 에너지 안보도 모두 포기했던 정책”이라며 “결국 부담은 한전의 적자와 치솟는 전기요금으로 돌아온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금액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에너지믹스 중 원전 비중 확대를 제시했지만 원전 건설에 수년이 소요되는 만큼 탈원전 정책을 지우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 2015년 7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올해 12월 완공됐어야 하는 신한울 3호기는 전 정부의 건설 중단 결정으로 환경영향평가부터 다시 받아야 해 준공이 2030년 이후로 밀린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중국의 도시 봉쇄(록다운) 해제에 따른 수요 증가로 LNG 가격은 내년에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역시 실내 마스크 허용 등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는 만큼 불경기와는 별개로 전력 사용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원전의 준공 지연에 따른 한전의 손실은 더 뼈아플 수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이들 원전 5기에 더해 신한울 3·4호기 등이 예정대로 건설돼 가동에 들어갔다면 기저 전원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라며 “국제 LNG 가격이 당분간 안정을 찾기 어려울 만큼 한전은 탈원전 정책에 따른 고통을 당분간 감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올해 한전의 예상 적자는 30조 원으로 예상된다. 이에 한전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한전채 발행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한전의 유동성 위기는 자금시장 전반을 불안하게 만들 정도다. 물가를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누르던 정부가 대폭 인상을 허용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 역시 한전채 발행만으로 한전의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탈원전 정책이 없었다면 줄일 수 있는 적자 규모인 7조 원의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한 의원은 “당초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당시 계획대로 건설하기로 했던 원전만 제대로 가동됐다면 천연가스 수입과 한전의 적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며 “원전 건설이 지연되고 일부 원전이 조기 폐쇄되며 국민들은 올 한 해만 7조 원의 금액을 더 부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