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태기의 인사이트]결사의 자유가 불법의 면죄부는 아니다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파업권 보장·남용 방지 균형 필수

ILO 협약 이해 차이가 분쟁 키워

노동관계의 안정적 발전 위해선

법·제도 개선 통한 개혁 일궈야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금년도는 노동환경이 급변했다. 지난해에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협약인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와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의 보호)가 4월에 발효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봄에는 택배 노조 파업이, 여름에는 조선업 하청 노조 파업이 발생했다. 여기에다 물류 마비의 위기를 야기한 화물연대 파업은 6월과 11월 두 차례 발생했다. 세 개의 파업은 공통적으로 단체교섭 당사자의 지위에 대한 의문과 파업의 불법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파업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또 단체교섭 요구 상대방이 단체협약을 체결할 지위에 있는 사용자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노동분쟁도 쌍방의 기대 차이가 커질 때 발생한다. 택배와 화물 그리고 하청 노조의 파업도 ILO 핵심 협약에 대한 기대 차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만큼 ILO 핵심 협약 논란이 뜨거운 나라는 찾기 어려운 것 같다. 노동계는 ILO 핵심 협약을 마음대로 파업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반면 경영계는 ILO 핵심 협약 때문에 안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파업이 더 악화한다고 걱정한다. 미국이나 중국은 ILO 핵심 협약이 유럽 기준이라며 아예 비준하지 않고 있고 일본은 비준했으나 이 때문에 노동분쟁이 많아지지는 않았다. 유럽 국가들은 ILO 핵심 협약을 비준했지만 나라에 따라 법제화의 내용에서 차이가 컸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결사의 자유에도 내재적 한계가 있다. ILO는 결사의 자유를 확대하려고 하지만 무분별한 파업에는 반대한다. 그뿐 아니라 결사의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국가 간에 차이가 있음을 당연히 존중한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은 국내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노조와 단체교섭 그리고 단체행동의 기본 원리에 대한 성찰은 부족하고 파업의 불법성과 이에 대한 처벌의 문제에 관심이 쏠려 있다. 이러다 보니 취약한 위치에 있는 근로자들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향상하는 방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대립을 넘어 노동계와 정부의 대립이 커지면서 노동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관련기사



ILO도 파업권의 남용에 반대한다. 파업할 때 반드시 법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규는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에 파업권의 남용 여부도 차이가 난다. 각국의 법규가 ILO 협약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ILO는 1998년 ‘파업권에 대한 ILO의 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는 파업권의 일반 원칙부터 화해·조정·중재의 활용, 파업권을 행사하기 위한 조건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유럽의 노조도 ILO와 비슷한 입장이다. 유럽노조연구소(ETUI)는 2007년 유럽연합(EU) 27여개 국가의 파업에 대한 법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했는데 파업권의 남용에 대한 법규는 ILO의 원칙보다 엄격하다.

노동관계의 안정과 발전에는 파업권 보장과 파업권 남용의 방지가 필수적이다. 이 두 개의 문제가 균형을 잡지 못해 우리나라는 ILO 협약 비준에 따른 혼란을 겪었다. 막이 오른 노동 개혁은 노사관계 법·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해 이런 혼란을 바로잡아야 한다. 모든 노동분쟁을 단체교섭과 파업으로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청 노조와 원청 기업처럼 단체협약을 체결·유지하기 어려운 관계라면 원하청의 계약을 공정하게 만들고 노사협의를 활용해 원청 기업 노사와 하청 기업 노사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화물 차주와 택배기사의 노조 결성과 단체행동 논란도 비슷한 해법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