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이슈 리포트] 외국인 국채 매도에 백기든 BOJ…'10년 엔저카드' 폐기 수순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

日 장기금리 변동폭 확대 속내는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




수입 원자재값 뛰고 물가 4% 육박



생활고 이어지자 엔저 '뒷북' 수정

구로다, 금융완화 정책 유지한다지만

시장은 '日 금리 인상' 기정사실화

고물가 이어지면 엔고 압력 커져

내년 초 달러당 120엔대 진입할수도

강달러 완화 맞물려 韓수출 숨통 기대

일본은행이 12월 20일 정책결정회의에서 금융 완화 정책 수정을 결정했다. 장기금리(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변동 폭을 기존의 -0.25~0.25%에서 -0.5~0.5%로 확대하고 장기국채 매입 규모를 월간 7조 3000억 엔에서 9조 엔 정도로 확대한 것이다. 단기금리는 계속 -0.1%를 유지하고 일본은행이 상장지수펀드(ETF)를 연간 12조 엔, 부동산투자신탁(REIT)을 연간 1800억 엔 매입하는 정책 등도 고수하기로 했다.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4%대에 육박하는 등 예상외로 급등하고 미일 간 금리차 확대로 엔저가 진행된 결과 수입 원자재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이나 서민층의 생활고가 가중돼 일본은행으로서는 비정상적인 금융 정책을 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들어 급격히 진행된 엔저 현상은 10월 한때 엔·달러 환율이 151엔을 기록해 일본 정부도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할 정도의 위기 상황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에 따라 일본은행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금융정책 수정은 뒷북 조치로도 볼 수 있다. 다만 미국의 물가 상승 압력이 정점을 지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정책의 강도도 낮아짐에 따라 엔화 가치는 11월 말 달러당 130엔대 후반으로 회복됐다. 그리고 일본은행은 엔저 현상이 어느 정도 완화된 시점에 금융정책 수정을 결정해 엔화 가치는 12월 20일 하루 만에 6엔이나 오르며 달러당 131엔대의 초강세를 보였다. 일본의 각 연구소·금융기관 등은 일본은행의 금융 완화 정책 고수로 금융정책 변경이 2023년 초반에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투자가들도 2023년 4월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교체되고 신임 총재가 들어서야 정책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던 만큼 이번 정책 결정은 시장참가자의 허를 찔러 외환시장이 요동쳤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행으로서는 급격한 엔저가 진행되는 가운데 금융정책을 변경해도 엔저가 멈추지 않고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금융시장으로부터 재촉받는 상황을 우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본은행이 예상외의 타이밍에 금융정책을 수정해 엔고를 유도한 것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금융시장에서 금리 인상을 수반한 추가 정책에 대한 기대가 고조될 가능성은 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변동성이 큰 신선식품을 제외한 핵심 지수 기준으로 11월에 전년 동월 비 3.7%에 달했으며 엔저 현상에 따른 물가 상승 효과를 고려하면 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쉽게 내려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행의 판단으로는 일본 경제의 성장세 부진으로 공급보다 수요가 부족해 목표로 잡은 2%의 안정적 물가상승세가 아직 어렵기 때문에 금융 완화 정책을 기본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지만 일본도 각국처럼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물가 상승세에 대처하려면 금리 인상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관련기사





시장 허찌른 결정…엔화 가치 급등



일본은행이 막대한 재정적자를 보이는 일본 정부의 국채를 계속 사들여 금융 완화 효과를 추구하면서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이로 인해 엔저가 유발돼 다시 물가를 자극하며 금리와 물가 수준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것이다. 사실 합리적인 수준에 비해 일본 국채 가격이 너무 높고 국채 유통 수익률이 낮다고 보는 외국인투자가들의 일본 국채 매도세가 확대돼온 것도 사실이다. 일본은행으로서는 금융정책 수정으로 국채시장에서 금리 인상 압력이 고조되지 않도록 주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의 금리 인상 부정하는 BOJ



구로다 총재는 이번 정책 변경이 금융 긴축은 아니며 금융 완화 정책을 당분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로다 총재는 그동안 엔저가 심화되면서 “장단기 금리 차 곡선 컨트롤(YCC) 정책의 금리 변동 폭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그렇게 하면 금리가 사실상 인상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못한다”고 언급해왔다. 이러한 기존의 발언을 생각하면 이번 정책 수정이 금리 인상이 아니라고 한 구로다 총재의 설명은 군색한 측면이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번 정책 변화를 사실상의 금리 인상으로 받아들여 일본 장기금리는 12월 20일 정책 변경 이후 상승세를 보였다.

일본은행은 소비자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당분간 YCC 정책을 유지하면서 금융 완화 효과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이러한 무리한 자세 때문에 채권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이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금리 변동 폭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사실 외국 투기 세력은 일본 금리가 정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보고 일본 국채에 대한 매도 공세를 강화해왔으며 이에 따른 금리 인상 압력을 막기 위해 일본은행은 일본 국채 매입을 확대했다. 그 결과 일본 국채 발행 잔액 중 일본은행의 보유분은 9월 말 50%를 초과했다. 그리고 이번 금리 정책 변경과 함께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 규모를 확대하는 모순적 행동을 취한 것은 이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행으로서는 금리 상승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 민간투자자가 국채시장에서 이탈하는 것은 채권시장 전체의 기능 상실, 일본 기업의 회사채 발행의 어려움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을 수 있다.

일본 국채를 매도하는 투기 세력으로서는 이번에 사실상의 금리 인상으로 일정한 승리를 거둔 셈이며 확대된 투자 수익으로 일본 국채의 추가 매도 거래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행은 일본 물가와 국채시장의 불균형을 적극 공격하려는 투기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도 이번 정책 수정이 금리 인상은 아니며 앞으로도 당분간 금리를 인상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엔화도 안정시켜야 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갑작스런 정책 수정에 글로벌시장 파장



일본은행의 갑작스러운 금융 완화 정책 수정은 글로벌 시장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각국 채권시장에서도 금리 상승의 여파가 추가로 확산된 것이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금리를 동결했던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각국 채권시장에도 매도 압력이 커진 것이다. 일본 투자 자금의 회수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기대도 확대됐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와 에너지 위기로 고전하는 유럽 각국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더욱 강화된 측면도 있다.

에너지 등 자원 가격의 불안정성, 미중 마찰로 인한 공급망 불안 등을 고려하면 일본을 비롯한 각국 물가가 2023년에도 크게 내려가기 어렵고 각국 금리도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위기도 겹쳐 일본을 비롯한 각국에서 한때 심화된 마이너스 금리 현상을 수정하려는 압력 속에 그동안 과잉 채무로 뒷받침돼온 부동산, 저수익 기업 주식, 코인 등 거품이 우려되는 자산에 대한 매도 압력도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엔고 반전으로 인한 일본의 물가 진정 효과가 점차 나타날 수 있으며 일본은행이 예상하는 대로 일본 소비자물가가 안정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내년에도 어느 정도의 추가 금리 인상을 필요로 할 만큼 고물가가 지속되고 국채시장의 매도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2023년 상반기에는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를 반영한 엔고 압력으로 엔화가 달러당 120엔대 진입을 시도할 수도 있다.

세계 최대 순채권국인 일본의 장기금리 상승세는 우리 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엔고와 함께 강달러 현상이 완화되고 원화 환율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는 한편 세계적인 금리 상승 압력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2023년 상반기 세계 경기도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강달러로 인한 신흥국 경제 불안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으며 엔고 추세가 우리 수출 확대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지평 특임교수는…일본 도쿄 출신인 한국 국적의 일본 경제 전문가다. 일본 호세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8년 LG경제연구원에 입사한 뒤 33년 동안 근무하면서 경제연구 부문 수석연구위원, 미래연구팀장, 산업연구 부문 에너지그룹장 등을 거쳤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지역학부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