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소비자 물가가 전년 대비 5.1% 급등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12월만 떼어 놓고 봐도 전년 동월 대비 5.0% 올랐다. 최근 물가 상승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전기료 인상과 유류세 인하 혜택 축소 등으로 물가 안정 속도가 더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5.1% 올라 1998년(7.5%)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2월 물가 상승률은 5.0%로 지난달과 같았다. 지난 7월(6.3%)과 비교하면 물가 상승 폭이 확실히 둔화했지만 8개월 연속 5%대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는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이 이어졌다. 석유류는 전년 대비 22.2% 올라 1998년(33.4%)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급 불안이 커진 탓이다. 외식과 여행비·병원비 등 개인서비스 물가 역시 5.4% 올라 1996년(7.6%) 이후 가장 크게 뛰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며 대면 서비스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12.6%나 올랐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0년 이후 최대 폭 상승이다. 올해 전기료가 세 차례에 걸쳐 19.3원, 주택용 가스요금은 네 차례에 걸쳐 5.47원 오른 영향이다.
올해와 비교하면 내년 물가는 하향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며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 압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12월 개인서비스 가격 상승률은 6.0%로 지난 10월(6.4%) 이후 하락하고 있다. 또 올해 기록적인 물가 상승세에 따른 역기저효과를 고려하면 수치 자체가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게 통계청의 전망이다.
다만 물가 하락 속도는 더딜 수 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원유(原乳·우유 원료) 가격이 오른 점을 고려하면 가공식품 출고가가 지속적으로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년부터는 유류세 인하 효과도 축소돼 (물가) 오름세가 다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출고되는 원유 가격은 1ℓ당 49원 오르고, 휘발유 유류세 인하 폭은 내년부터 37%에서 25%로 축소된다. 상당 폭 인상이 예고된 전기·가스 요금도 물가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에도 (전기료를) 상당폭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내년 1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안은 이날 오전 발표될 예정이다.
고물가가 한국 경제에 구조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 충격에 의한 물가변동분을 제외한 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 이른바 근원 물가는 올해 전년 대비 4.1% 올랐다. 2008년(4.3%) 이후 최고치다. 앞서 한국은행의 한 금융통화위원은 “신 냉전신대의 대두,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성, 새로운 경제안보 질서의 모색, 기후 변화, 인구 고령화 등 서서히 진행되는 구조적 전환도 향후 글로벌 경제가 지난 20년의 저물가·저금리 시대로 곧바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물가가 빠르게 안정세를 찾을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신년 초 제품 가격 조정과 설 명절 성수품 수요 증가 등 물가 불안 요소가 여전히 잠재돼있다”며 “다음 달 설 민생안정대책을 마련하고 농산물 유통구조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물가 안정 기조가 조속히 안착될 수 있도록 총력 대응을 지속하겠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