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새해 벽두부터 선거제도 개편 논의로 뜨거워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정치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선거제는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하는데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면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3명·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중대선거구제는 한 개 지역구에 2~3인의 대표를 뽑는 방식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대변될 수 있고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제13대 총선 때 각 선거구에서 득표를 가장 많이 한 1인이 선출되는 소선거구제를 택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몇 차례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언급한 바 있지만 집권 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입법부 수장인 김 의장도 화답했다. 김 의장은 이날 국회 시무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현행 소선거구제가 사표가 많이 발생하고 국민의 뜻이 제대로 결과에 반영되지 못하며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로 인한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대안 중 하나로 중대선거구제도도 있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여러 대안을 잘 혼합해 선거법을 새롭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늦어도 2월 중순까지는 선거법 개정안을 복수로 제안하고 300명 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에 회부해 3월 중순까지는 내년에 시행할 총선 선거제도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 의장은 지난해 12월 26일 여야 정개특위 소속 의원들과 만찬을 가지면서 법정 기한인 4월 10일 이전 선거법 개정을 마치기 위한 개정안 제출을 각 당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 선거구제 개편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헌법재판소가 당시 3 대 1 인구편차의 선거구 획정 방식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중대선거구제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라는 선거제도 개편이 한 차례 진행됐지만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의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됐다.
지금까지 중대선거구제 도입 목소리는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 정당을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거대 양당 중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 요구에 비교적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지역주의 타파 철학을 실현하고 동시에 ‘동진(東進)’으로 불린 영남 지역 교두보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부산 현장 최고위원회 직후 “(중대선거구제의) 장점으로는 소수자들의 진입이 가능하고 신인 진출이 용이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득권, 소위 유명하고 경제력이 큰 사람들만의 장이 될 수도 있다”며 “장단점들을 충분히 고려해 당내 의견을 모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탄희 의원은 국민에 의한 정치 개혁을 제안했다. 이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회의원 기득권의 온상인 소선거구를 폐지하고 국회의원 정수 배정과 선거구 획정을 국민과 전문가들에게 전권을 위임할 것을 제안한다”는 입장을 냈다.
선거제도 개편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국민의힘도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정개특위에서 관련 내용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며 “원내에서도 의원총회 등을 통해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당의 입장을 빠른 시간 안에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법정 기한이 3개월도 남지 않았고 그사이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치러야 하는 점은 넘어야 할 과제다. 양당은 아직 구체적인 선거제 개편 방안도 정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소속 정개특위 위원은 “이해관계에 얽힌 의원들이 결사반대하고 있다”며 “이번 선거는 어렵고 차차기 총선에나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