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올해 부동산 관련 투자를 보수적으로 집행할 것으로 파악되면서 가뜩이나 심각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성 리스크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PF 시장이 레고랜드 사태의 충격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기관투자가의 상당수가 브리지론 등 대출을 아예 중단하거나 1군 시공사 사업장, 수도권 등에 대해서만 투자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특히 분양의 첫 단추로 꼽히는 브리지론 자체가 막히면서 건설 업계의 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5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한 대형 증권사의 ‘주요 기관투자자 동향 및 대체 자산 세일즈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상당수의 기관투자가가 최소한 올 상반기에는 부동산 투자를 보수적으로 집행할 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이들이 가장 강도 높게 관리하려는 것은 브리지론이다. 연기금에서는 최소 두 곳이, 캐피털에서는 최소 세 곳이 브리지론 불가나 비선호 방침을 세웠다. 본 PF에 대한 대출 불가 방침을 세운 곳도 많았는데 시중은행과 보험사, 저축은행 각각 한 곳이 당분간 본 PF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부동산 PF 단계는 사업 부지 매입→인허가→착공→분양→입주 순서로 진행되는데 브리지론은 부동산 개발 사업 초기 토지 매수를 위해 쓰이는 자금으로 본 PF 이전 사업에 투입되는 금융을 통칭하기도 한다. 통상 시행사는 약 5% 상당의 자기자본과 브리지론 등을 통한 대출로 부지를 매입하는 만큼 신규 브리지론이 실행되지 않을 경우 부동산 개발 사업 시작 자체가 사실상 어렵다.
브리지론을 추후 본 PF로 전환하는 단계에서 사업성 등의 문제로 전환에 실패하기도 한다. 이 경우 시행사는 사업 부지 계약 단계에 투입된 자기자본을 잃지 않기 위해 기존 브리지론을 연장해야 한다. 증권가의 한 PF 관계자는 “현재 상당수 기관이 신규 브리지론을 사실상 중단했으며 기존 브리지론 연장에 대해서도 이자를 제외한 원금만 연장해주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본 PF로 넘어가는 데 실패한 시행사들 중 상당수가 사채시장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공사를 따져 선별 투자를 결정한 곳들도 많다. 공제회에서는 최소 세 개 기관이 대형 건설사나 1군 이상 시공사의 사업장에만 투자 가능 방침을 세웠다. 보험사에서도 최소 두 곳이 신용등급 A0 이상, 1군 시공사만 검토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일부는 투자 가능 지역을 제한하기도 했다. 한 보험사는 인구 50만 명 미만의 지방 소도시에 대한 투자 불가 방침을 정했고 캐피털 두 곳이 대구 사업장에 대한 투자 불가 방침을 세웠다. 이들은 각각 중소 도시와 경북에 대해서도 불가 방침을 마련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5만 8027가구로 이 중 대구가 1만 1700가구로 가장 많았고 경북(7667가구)이 뒤를 이었다.
요구 수익률을 10%대로 요구하는 곳들도 많았다. 특히 캐피털사들의 경우 조달금리가 7%대인 점을 고려해 최소 12~15%일 경우에만 사업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수익률을 낼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진입장벽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토부가 이달 3일 건설사의 자금 조달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주택 공급이 차질 없이 이뤄지게 하겠다면서 사업 단계별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PF 대출 보증을 신설·확대하겠다고 밝히는 등 PF 관련 정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5조 원 규모의 미분양 PF 보증 상품을 신설해 준공 전 미분양이 발생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사업장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건설 업계에서는 이 부분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형범 대한주택건설협회 주택정책부장은 “미분양 대출 보증은 공정률 15% 이상인 사업장에 대해서는 분양률과 관계없이 대출 보증을 해주겠다는 것”이라며 “기존에는 분양률 60%와 공정률 30% 이상을 조건으로 대출 보증이 시행됐는데 이번에 문턱이 대폭 낮아지면서 미분양 사업장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김 부장은 “정부가 제시한 착공 전 PF 대출 보증의 규모가 10조 원인데 이 대출이 대형 사업장 위주로 이뤄지면서 정작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의 중소 사업장이 소외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