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예정된 투자의 축소·보류,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SK온은 미국의 완성차 업체 포드, 튀르키예 제조 기업 코치와 함께 튀르키예에 세우기로 한 3조 원대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 공장 사업을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침체 우려와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SK온은 2조 8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현금 확보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청주 반도체 공장 증설을 보류한 데 이어 올해 설비투자도 지난해 대비 50% 넘게 감축하기로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3600억 원 규모의 상압증류 공정 및 감압증류 공정 투자를 중단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1000억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구 염색 공장과 인천 화학 공장을 매각하기로 했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1조 7000억 원 규모의 미국 애리조나주 배터리 공장 투자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기업들이 움츠러드는 것은 경기가 위축되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8일 발표한 1월 경제 동향에서 국내 경기가 둔화 국면에 진입했다고 판단해 지난해 12월의 경기 둔화 가능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경제 불확실성은 한층 커졌다. 전미경제학회 연례 총회에서 석학들은 경기·인플레이션·금리 향방 등 모든 것이 시계 제로인 갈림길에 섰다고 진단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투자·고용 확대라는 지렛대가 필요하다. 올해 경기 침체는 어쩔 수 없더라도 침체 기간을 줄이고 반등의 모멘텀을 만들려면 위험을 감수한 선제적 투자가 절실하다. 정부의 정책 최우선 목표는 기업 투자 유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는 규제혁신전략회의를 더욱 강화해 기업의 발목에 채워진 규제 모래주머니를 제거해야 한다. 거대 야당도 투자·고용 촉진을 위해 반도체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와 법인세 추가 인하 입법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