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WB)이 올해 전 세계에 강력한 경기 한파가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해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의 투자 감소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 등이 얽혀 경기에 긍정적인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이다. 최근 미국 월가에서 이른바 ‘골디락스 시나리오(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 경제 상황)’가 나올 정도로 낙관론이 번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경기 하향에 무게가 강하게 실린 셈이다.
WB는 11일(현지 시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전 세계 성장률이 1.7%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6월 전망치(3.0%)와 비교해 1.3%포인트 하향 조정된 수치다. 주요 국제기구 가운데 올해 전 세계 1%대 성장을 예고한 곳은 WB가 처음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11월)와 국제통화기금(IMF·10월)은 올해 세계 성장률을 각각 2.2%, 2.7%로 전망했다. 뒤집어 말하면 불과 두세 달 사이에 침체 그림자가 더 짙어진 것이다. WB는 매년 1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세계경제전망을 내놓는데 우리나라 성장률은 별도로 발표하지 않는다.
이번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아이한 코세 WB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전 세계 경제가 면도날 위에 서 있다”며 “6개월 전 우리가 예상한 최악의 가정들이 모두 현실화했고 금리 등 금융 여건이 더 빡빡해지면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이 리세션(경기 후퇴)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리세션은 국내총생산(GDP)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성장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경제 용어지만 사전적 정의와 별개로 경제주체들은 ‘심리적 리세션’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WB의 분석이다.
WB는 특히 미국 경제가 올해 0.5% 성장하는 데 그쳐 상당한 고통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6월 전망치(2.4%)와 비교해 1.9%포인트나 낮아진 수치다. IMF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올해 성장률을 1.0%로 제시했는데 이 수치와 비교해도 성장률이 절반으로 낮아졌다. WB는 미국의 △식량·에너지 가격 상승 △노동시장 경색 △재정 및 통화 긴축정책 등이 향후 저성장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나마 중국이 코로나19 봉쇄를 완화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올해 중국은 4.3% 성장해 지난해(2.7%) 대비 성장세가 반등할 것이라고 WB는 내다봤다. 다만 이마저도 지난해 6월 전망치(5.2%)와 비교하면 하향 조정된 수치다. WB는 이 밖에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수급 불안 등의 영향으로 제로(0)성장하고 인도는 6.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주요 국가들의 투자도 바닥을 칠 것으로 분석됐다. WB는 2022~2024년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총투자가 평균 3.5% 증가에 그쳐 지난 20년간 투자 증가율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WB는 “올해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국의 성장세가 잠재성장률 수준을 큰 폭으로 하회할 것으로 보인다”며 “가계부채 등 채무 부실화 방지에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협의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