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저출산 재앙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시기는 2002년이다. 그해 합계출산율은 1.18명으로 인구 변동의 변곡점이 됐다. 인구학자들은 합계출산율이 1.3명 아래로 떨어지면 ‘초저출산’으로 부르고 이런 추세가 3년 이상 지속되면 어지간해서는 초저출산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저출산의 사회·경제적 파장은 여러 갈래로 시차를 두고 나타나지만 교육 현장만큼 당장 피부로 체감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 태어난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한 2021학년도 대학 입시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입학 자원보다 입학 정원이 더 많은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러다가는 신규 교원을 더 뽑지 못할 것이라는 비명 소리가 들리고 있다.
2017년 여름 ‘교대생 임용 절벽’ 사태는 초저출산의 덫에 빠진 교원 수급의 난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발표한 2018학년도 초등 교원 선발 인원은 3321명으로 전년의 5764 명에 비해 43% 줄었다. 이 가운데 서울은 유독 감소 폭이 심했다. 서울의 선발 인원은 고작 105명. 전년(846명)에 비해 무려 88%나 급감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비화했다. 교대생 동맹 휴학과 연대 시위 등 거센 반발에 교육 당국이 최종 선발 인원을 385명으로 늘렸지만 이는 미래의 선발 인원을 앞당긴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외려 합격하고도 교사 발령을 받지 못한 대기자가 더 늘어나는 부작용을 초래한 것이다. 그 여파는 지금도 미치고 있다. 27일 최종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있는 2023학년도 서울 지역 초등 교원 선발 인원은 115명이지만 발령을 받지 못한 임용 대기자가 186명에 이른다. 이는 올해 시험 합격자 전원이 올해 교단에 설 기회가 없다는 의미다. 합격자 전원 발령 대기는 지난해에도 발생했다. 임용 대기자는 전국적으로 540명에 이른다.
초등 교원 시험 경쟁률이 대략 2 대 1 수준이므로 재수와 미발령 대기 기간을 고려하면 교대 졸업 후 최소 2년가량 사실상 백수 신세가 되는 셈이다. 광주 교육청은 2016년부터 8년 연속 20명 이하의 초등 교원을 선발하고 있다. 임용 대기 문제는 10년 넘도록 해결책이 없었다는 측면에서 교대생에 대한 ‘희망고문’이나 다름없다. 전국 10개 교대 정원은 2012년 절반을 줄인 후 10년째 3847명으로 요지부동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키우고 있다.
◆국책연구기관, 16년 전 교원 ‘과잉 공급’ 경고
중등(중고교) 교사의 수급 상황은 치유 불가능한 고질에 가깝다. 시험 경쟁률이 해마다 높아지면서 올해의 경우 두 자릿수대로 올라섰다. 중등 교사를 하려면 재수·삼수는 기본이고 5년 이상 ‘장수생’도 적지 않아 교원 양성 체계가 ‘임용고시 낭인’을 양산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중등 교원 선발 인원은 연간 4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교원 양성 대학의 입학 정원이 2만여 명에 이르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1970년대 인구 팽창기에 도입한 교원 양성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 결과다.
교원 수급 불균형 문제는 오랫동안 지적돼왔는데도 정부의 대처는 안이하기만 했다. 초저출산의 경고음이 켜진 2002년 이후 20년 동안 학령인구가 급감했음에도 교원 수는 되레 늘어났다. 교육 기본통계를 보면 초중고교생은 2002년 777만 명에서 지난해 527만 명으로 32%가량 줄어든 반면 초·중등 교사는 같은 기간 외려 9만 명가량(24%) 늘어났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이미 2006년 교육부 용역보고서에서 “수년 내 초·중등 교원의 공급 과잉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경회 명지대 교육대학원 석좌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교원 수 조정이 필요했는데도 역대 정부마다 폭탄 돌리기를 한 결과”라며 “이대로 가면 현 정부 말부터 교원 과잉 문제가 표면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용 절벽’을 넘어 ‘임용 빙하기’가 온다는 의미다.
미래는 더 암울하다. 통계청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2020~2070년)에 따르면 대학생을 제외한 초중고 학령인구는 2020년부터 2030년까지 10년 동안 141만 명(25.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초저출산의 영향이 가장 빠르게 미치는 초등학생은 같은 기간 272만 명에서 159만 명으로 41.5%나 줄어든다. 이렇게 급감한 초등학생 수는 순차적으로 중고교 학생 수 감소로 연결되고 결국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대학으로 번진다.
◆교사 1인당 학생 수, 선진국 수준 도달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의 긍정적 영향도 있다. 만성적인 과밀 학급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인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 중등학교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2018년 기준 1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 13.1명보다도 적다. 초등 교사 비율도 올해 선진국 수준(14명대)을 따라잡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학생 수 감소에 비례해 기계적으로 교원 수를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도 있지만 반대로 학급당 28명이 넘는 과밀 학급도 전체의 20%쯤 된다. 미래에 대비한 디지털 인재 양성 수요를 반영해야 하고 기초학력 강화와 고교학점제 시행 등에 따른 교원 증원 수요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미래 정책 수요가 가파른 학령인구 감소 추세를 상쇄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길재 충북대 교육학과 교수가 지난해 3월 교육정책포럼에 게재한 ‘중장기 필요 교원 추계’를 보면 초등 교사는 지난해 18만여 명에서 2030년 12만여 명으로 30%가량 감축 요인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추계가 정책 변수에 따른 수요를 배제한 것이지만 머지않아 초등 교원을 더 이상 뽑지 못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교수는 “교원 수급의 불균형이 거의 임계점에 달했다”며 “앞으로 교원 수급 계획에서는 교원당 학생 수, 학급당 학생 수라는 전통적인 정량 지표의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면 단위 지역에서는 초등학교 폐교가 지역사회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학생 수 60명 미만의 소규모 학교와 일반 학교의 교원 수급을 분리해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먹구구식 교원 수급 계획도 도마에 오른다. 인구 감소를 반영한 중장기 교원 수급 계획은 2006년 첫 발표 이후 지금까지 6차례 나왔지만 수립 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계획 기간도 제각각이었다. 심지어 교원 수요를 부풀렸다는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다. 2020년 계획은 2018년 수급 계획(2018~2030년)을 수정한 것인데도 2025년 이후 계획을 내놓지 않아 교원 감축의 부담을 차기 정부에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이경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원 수급 중장기 계획은 정례적으로 발표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함에도 상황 논리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이뤄졌다”며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주기가 5년에서 2년 단위로 축소된 만큼 이에 맞춰 2년마다 최소 10년 뒤를 내다보고 수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풍의 눈’ 교육전문대학원 전환
전문가들은 “교원 수급 불균형은 신규 임용 교원을 점차 줄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교원 양성 체계의 획기적인 개혁으로 정원 감축과 통폐합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3일 교육부가 신년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교·사대의 교육전문대학원 전환은 교원 양성 대학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다. 교육부는 10여 년 전부터 교육대와 국립 사범대의 통합을 추진해왔으나 2008년 제주대와 제주교대 통합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년 전 부산교대와 부산대 사범대가 통합하기로 했음에도 반대 여론이 형성되면서 지지부진한 상태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원을 전문적으로 길러내는 폐쇄형 교원 양성 체계는 인구 팽창기에는 효율적으로 작동했지만 인구 절벽기에는 맞지 않는다”며 “개방형 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개방형 교원 양성 체계는 일반 대학을 거쳐 교육전문대학원에서 교직 과정을 이수하는 것으로 4+2년, 2+4년 등의 학제를 말한다.
교육전문대학 도입은 20여 년을 끌어온 해묵은 과제다. 교육계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각론에서는 이해관계가 엇갈려 단 한 발짝도 진척시키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에서도 ‘중장기 과제’로 넘겨버렸다. 가뜩이나 복잡한 교원 양성 기관의 유형만 확대할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경회 교수는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은 사회적 수요가 뒷받침돼 정착됐지만 교사를 줄여야 하는 마당에 6년제를 도입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유명무실한 교원평가제를 활성화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길재 교수는 “현행 교·사대 체제의 전면적인 폐기가 없는 한 교육전문대학원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라며 “대학의 자율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러지 못하면 정부가 책임을 지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