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내 영웅 성별을 반반으로 맞추자’고 개발자들에게 제안하니 ‘왜 그래야 하나’라는 부정적 답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개발자들의 편견이 담긴 인공지능(AI)은 인류가 지난 100여 년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끝에 쟁취해낸 다양성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들도 윤리학·철학 등의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13일 윤송이 엔씨소프트(NC) 사장 겸 NC문화재단 이사장은 서울 역삼동 한국고등교육재단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디지털인문학: 포스트 AI 시대를 위한 융합전략’ 심포지엄에 참여해 이같이 강조했다. 미국에서 거주 중인 윤 사장은 이날 화상으로 참여해 ‘AI 시대,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역량’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최근 AI 분야 석학들과의 대담을 담은 책 ‘가장 인간적인 미래’를 출간하기도 한 윤 사장은 이날 강연에서 수차례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미 세계 주요 대학들은 공학과 인문학을 융합한 새로운 수업 모델을 만들어 실행하고 있다”며 “인간이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인재가 되려면 일상적으로 윤리적 측면을 고려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 역시 연사로 참석해 미래 AI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유전자 가위, AI 등 신기술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22세기에는 타고난 유전자를 편집한 ‘생체증강인’, 뇌를 컴퓨터에 연결한 ‘AI증강인’ 등 다양한 모습의 ‘신인류’가 등장할 것”이라며 “이들과 기존 인류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신인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모습은 다를지라도 결국 인간의 본성은 동일하기 때문에 인류의 근원적인 욕망을 탐구하는 인문학을 배워야 미래 사회의 모습도 예측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날 행사에는 KAIST에서 사제 지간이던 윤 사장과 이 총장이 나란히 연사로 참석해 눈길로 끌었다. 두 사람은 1999년 방영된 SBS 드라마 ‘카이스트’에 등장한 ‘천재 소녀’와 ‘괴짜 교수’의 실존 모델로 유명하다. 지난해 열린 NC문화재단 10주년 행사에도 함께 등장해 미래 세대를 위한 창의성 교육의 중요성을 입 모아 강조한 바 있다. 30년 전 드라마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았던 스승과 제자가 이제는 ‘차세대 교육 전도사’로 함께 나서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한 것이다.
한편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센터가 주최하고 고려대 디지털인문센터, 서울대 인문대학이 협력한 이번 행사는 이달 9일부터 12일까지 대전 KAIST·KT 공동연구센터에서 개최된 ‘2023 디지털인문학 겨울학교’와 연계해 진행됐다. 디지털인문학 겨울학교는 인문학 연구자들이 역사나 문학 등의 연구 분야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관점으로 인문학을 볼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디지털과 인문학의 융합 연구를 기획하고 수행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방법론을 나흘간의 전일제 강의와 실습을 바탕으로 교육했다.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센터 관계자는 “당초 30명 내외의 인원을 모집할 계획이었으나 예상보다 많은 지원자가 몰려 교육 인원을 2배 가까이 늘려 선발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