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8일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 등 10여곳을 동시다발로 압수 수색했다. 수사기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본부를 압수 수색한 것은 1995년 민주노총 설립 이후 처음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압수 수색의 명분은 ‘서울 도심 불법 집회·시위’ 혐의였다. 양대 노총 가운데 한 곳인 민주노총 간부가 북한 연계 간첩단 의혹을 받는 다른 지하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향후 수사에서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파장이 일파만파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원과 경찰은 강제 수사를 통해 민주노총 핵심 간부 A 씨가 북한 노동당 직속 대남 간첩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과 연계됐는지 등 사건의 실체 파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수사 당국은 제주 지하조직 ‘ㅎㄱㅎ(한길회 초성 추정)’와 경남 창원·진주의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등 간첩단 혐의 지하조직이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김명성에게 지령을 받아 지난해 6·1 지방선거와 반정부 시위에 개입했다는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 사건은 다른 지하조직과 별건으로 알려졌지만 문화교류국 지령을 받고 지하조직을 결성하는 등 수법과 패턴이 유사해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수사당국은 ㅎㄱㅎ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남 창원과 진주·전북 등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반정부 및 이적 활동 등을 한 정황을 포착한 바 있다.
A 씨 역시 다른 간첩단 혐의 지하조직처럼 2016년 9월 베트남 하노이, 2017년 9월 캄보디아 프놈펜, 2018년 9월 중국 광저우, 2019년 8월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북한공작원과 접선해 공작금과 불상의 내용물을 주고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보건의료 노조 간부 B 씨, 전 금속 노조 간부 C 씨 등은 2017년 9월 A 씨의 캄보디아 프놈펜 일정에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과 경찰은 수사 대상자들의 자택과 사무실 등에서 확보한 압수물을 분석하는 등 국보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보강 수사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 측은 수사 당국의 강제 수사에 대해 기획성 공안 수사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말실수한 상황,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야당 채택 보고서로 끝난 문제, 여당 대표 선거에서 나오는 얘기가 이번 압수수색으로 싹 사라졌다”며 “이게 우연인지 아닌지는 상식 있는 국민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논평을 내고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노동계와 윤석열 정부의 갈등도 극단으로 치닫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논평에서 “노동조합과 민주노총을 음해하고 고립시키려는 윤석열 정권의 폭거에 맞서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도 “바야흐로 검찰과 공권력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논평했다.
/박우인 기자 wipark@sedaily.com, 박신원 기자 shin@sedaily.com, 이건율 기자 yu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