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일시, 장소 등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해 공소제기 절차 무효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원고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본인 명의의 계좌에 연결된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양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실제 A씨의 체크카드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됐다.
그러나 A씨가 체크카드를 분실했다며 범행을 부인하면서 검찰은 공소장에 2018년 11월 4~15일경 불상의 장소에서 본인 명의의 계좌에 연결된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불상의 방법으로 불상의 인물에게 양도했다고 기재했다.
쟁점은 공소사실에 A씨가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넘긴 일시와 장소, 양도 방법 등이 특정되지 않아 공소제기 절차 무효인지 여부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 측은 "이 사건 공소사실은 일시와 장소, 양도 상대방과 양도 방법이 특정되지 않아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에 위반돼 공소제기 절차 무효"라며 항소했다.
그러나 2심 역시 A씨의 혐의로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범행의 경우 점 조직 형태로 범행이 은밀하게 이뤄져 범행 일시와 장소, 양도 상대방 등을 특정하기 어렵다"며 "양도 시점이 10일 이내로 특정돼 있고,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도 명시돼 있기 때문에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체크카드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이용될 당시 비밀번호 오류 입력이 없었던 점, 휴대전화에 접근매체 양도와 관련한 광고문자를 모두 삭제한 점 등도 A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양도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정됐다.
그러나 대법원 공소사실에 기재된 A씨의 행위는 대여와 전달 등과 구별되는 양도를 구성하는 고유 사실이 적시되지 않았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의사로 체크카드 등을 건네준 게 아니라고 주장하며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기재된 공소사실은 피고인에게 방어의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방어권을 행사하는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